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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기도 17] 제3장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기도 (Effectual Fervent Prayer)

[영적인 기도 17] 제3장

En Hakkore 2024. 5. 2. 12:23

히브리서 13:20, 21(III)

바울은 메시야적 예언에서 기도로 전환하고 있다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의 뜻을 행하게 하시고."

사도는 언약의 내용들을 살펴 보고서 이 기도를 드린 것이 아니다. 앞에서 우리는 구약성경의 예언 가운데에서 약속된 메시야를 평강의 언약의 보증인으로서, 그리고 그의 백성의 '목자'로서 살펴 보았다. 이제 이 말씀 가운데에서는 그가 그의 양을 거룩함과 모든 선한 일에 완전케 하시는 목자로 묘사되어 있는 것을 살펴 보기로 하자.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그들에게 다 한 목자가 있을 것이라"(겔 37:24). 여기에서 주께서는 메시야, 곧 다윗의 큰 자손이 그들의 왕으로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하나가 되게 하는 날이 올 것이며 무적의 목자가 되실 것이라는 사실을 선언하시고 있다. 같은 구절에서, 그는 덧붙여 "그들이 내 규례를 준행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할 것이다"라고 선언하셨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을 "영원한 언약의 피로" 우리 주 예수를 무덤으로부터 구원하신 "평강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면서,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양들에게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이루시기를 요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비록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구하여야 할지라"(겔 36:37)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이(주기도문의 여러 가지 간구의 내용이 그 증거가 된다)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영원히 짊어져야 할 의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영감으로 깨달음을 얻고 드리는 이 기도가 전 서신의 내용의 요약일 뿐만 아니라 메시야적 예언들의 요약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화해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겠다는 소원을 낳는다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의 뜻을 행하게 하시고."

이와 같은 기도는 하나님을 "평강의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자만이 올바르게 드릴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어떤 진실한 소망에 대하여 생각하기 이전에, 믿음으로 먼저 그를 화해한 분으로 생각해야만 한다.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어떤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면, 그리고 그의 이름을 말하자마자 어떤 비굴한 두려움이 생긴다면 우리는 그를 섬길 수도, 그리고 그 앞의 즐거운 일도 할 수가 없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며"(히 11:6). 믿음은 두려움과는 아주 반대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그의 명령대로 따르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우리의 적이 아니며 우리의 친구라는 것을 확신해야만 한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으며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법적 요구를 만족시키셨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만 우리는 그런 확신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십자가의 피로"(골 1:20) 완전하고 영원한 화평을 이루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멍에를 의지하는 자와 그의 희생을 믿는 자에게 "만사에 구비케 하고 견고케 하시는 영원한 언약을"(삼하 23:5) 맺으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은혜를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기 이전에, 먼저 믿음으로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평강의 하나님"께 드리는 이 기도의 타당성을 알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지금 모든 선한 일에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그의 뜻을 행하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것이 실질적으로 하나님의 평화를 누리는 데에 가장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다"(시 119:165). 왜냐하면 지혜의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잠 3:17)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기의 즐거움을 위해서 지혜의 길을 버리면서 마음의 평정을 기대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분명히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어떤 죄를 범하는 동안에는 마음의 화평이 있을 수 없다.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한다.♡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는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갈 6:10). 만일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즐거운 일들을 하려고 힘써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마음 속에는 평강 대신에 혼란과 근심이 가득하게 될 것이다.

성육신하신 아들에게 붙여진 "평강의 왕"이라는 칭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의 깊은 영적 의미가 있다. 그는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한다"(요 8:29)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혼란되지 않은 평온이 있었다. 거기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 14:27)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기도 p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