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영적인 기도 14] 제2장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기도 (Effectual Fervent Prayer)

[영적인 기도 14] 제2장

En Hakkore 2024. 5. 1. 12:50

히브리서 13:20, 21(II)

영원한 언약의 피로

마지막으로,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그 크신 일은 "영원한 언약의 피로" 된다고 하는 것을 살펴 보기로 하자.

이 말씀의 정확한 의미에 관해서는 이 서신에 대한 다른 주석가들도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흥미있는 질문에 대한 충분한 토론이 실제로 현재의 논지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지만, 만일 우리가 그것에 관하여 잠깐 언급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독자가운데 좀더 학식이 있는 사람들은 불만스럽게 여길 것이다. 그러므로 약간 전문적인 면을 다룰지라도 널리 양해하길 바란다.

히브리서 전체를 주의깊게 읽어보면 거기에 "언약"(10:29), "좋은 약속"(8:6), "새 언약"(8:8) 그리고 "영원한 언약"이라고 언급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이 같은 것에 대한 묘사라고 생각해 왔지만 나는 그들과 의견을 달리한다.

영적인 이스라엘과 유다(즉, 교회)와 맺은 새롭고 더 좋은 언약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즉, "육체를 따라 난 이스라엘")과 맺은 첫(7절) 또는 옛 언약(13절)과는 서로 반대된다는 사실이 히브리서 8:6-13에 나타나 있다. 다시 말하면, 두 개의 서로 다른 언약 혹은 경륜 아래에 있는 유대주의와 기독교는 서로 대조된다.

즉 "영원한 언약"은 인류의 연합된 머리로서의 아담과 맺으신 행위의 언약과는 반대이다. 비록 행위의 언약이 먼저 나타나기는 하였지만 영원한 언약, 곧 은혜의 언약이 먼저 시작되었다.♡

만물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으뜸이 되어야 하며(골 1:18)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그와 하나의 계약을 맺으셨다. 그 계약은 '구속의 언약', '은혜의 언약' 등 여러 가지로 불리워 왔다. 그 계약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택한 자의 구원을 위하여 완전한 계획과 준비를 하셨다.

그 영원한 언약은, 여러 가지 다른 경륜 아래서, 인류의 역사를 통하여 여러 세기 동안 혜택받은 각 개인에게 똑같이 부여된 축복이었다. 옛 언약, 곧 유대주의에서는 그 영원한 언약의 요구와 조항들이 도덕적이고 의식적인 율법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리고 새 언약, 곧 기독교에서는 그것의 요구와 조항들이 복음 안에서 그리고 복음으로 이루어졌고 선포되었다. 모든 세대에 있어서 그것의 확실한 은혜(사 55:3)에 참예하는 자들에게는 회개와 믿음과 순종을 요구하였다. 유명한 신학자 핫지(A. A. Hodge)는 그의 [신학개론, Outines of Theology]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언약의 중보'라는 구절은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에게 세 번 적용되어 있다(히 8:6; 9:15; 12:24). 그러나 각각의 경우마다 이 언약이란 말은 '새' 혹은 '더 좋은'이란 형용사에 의해 수식을 받고 있는데, 그것은 여기에서 은혜의 언약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모세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소개되어진 불완전한 통치와는 반대로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소개된 그 영원한 언약에 의한 새로운 통치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음이 분명하다.

영원한 언약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맺으신 그 영원한 언약을 언급하면서, "영원한 언약의 피"라는 말의 문자 그대로의 뜻에 대하여 살펴 보기로 하자.

히브리서 13:20 이전의 구절에 비추어 볼 때, "영원한 언약의 피"란 다음의 세 가지의 의미를 나타낸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첫째로,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칭호와 관련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 자신의 피로 화평을 이루고 영원한 계약을 확립했을 때(골 1:20) 하나님께서는 역사적으로 "평강의 하나님"이 되셨다. 창세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죄많은 인간들 사이에 평화를 이루도록(눅 2:13, 14) 계획하셨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일이 영원 전에 하나님과 아들 사이에 의견의 일치를 본 그 일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둘째로,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의 사실을 가리킨다.♡

만민의 의로운 심판자로서, 성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흘리심에 의해 감동하셨으며, 그리하여 그를 무덤 가운데서 구원하셨고 최고의 존귀와 권세가 있는 곳으로 그를 높이셨다(마 28:18; 빌 2:5-7). 그 보증인이 그 약속에 대한 그의 책임을 충실히 이행하였으므로 이 세상의 통치자는 그를 감옥으로부터 구원해야 할 의무가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정당하게 이해해야만 했다.

세째로, 이 거룩한 말씀은 그리스도의 직책과 관련되어 있다.♡

우리 주 예수께서 하나님의 택한 자들을 찾아서 그들을 양의 우리 안으로 인도하시고 거기에서 그들을 다스리시고 기르시고 보호하시는 양의 큰 목자가 되신 것(요 10:11, 15)은 하나님과의 계약에 따라 그들을 위하여 피를 흘려 주신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은 약속에 의해 행하신 일일 뿐만 아니라 그의 공로에 의해서 행하신 일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언약'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일 뿐만 아니라 언약의 '피'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것을 얻어 칭찬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영예이며 영광이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이자 동시에 사람인 중보자로서 그는 그의 순종과 고난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서 무덤 가운데서 구원을 받은 것이었다.

더구나 그가 구원을 받고, 그들의 구원을 보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그의 백성의 머리로서였다. 만일 그가 "영원한 언약의 피로" 무덤 가운데서 구원을 얻었다면, 그들도 똑같이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그의 부활에 의해서 우리가 무덤으로부터 구원을 얻게 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즉,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 4:14; 롬 4:25 참조). 이와같이 교회는 완전하고 최종적인 구속에 대한 보증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목자에게 분명히 약속하셨다.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내가 너의 갇힌 자들은 물 없는 구덩이(즉, 무덤)에서 놓았나니"(슥 9:11)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던"(히 9:12)것처럼 그 피의 무한한 값에 의하여 우리가 또한 하늘의 보좌에 들어가게 된다(히 10:19). 즉, 그가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요 14:19)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Arthur W. Pink 영적인 기도 p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