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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기도 2] 서론 2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기도 (Effectual Fervent Prayer)

[영적인 기도 2] 서론 2

En Hakkore 2024. 5. 1. 12:31

영적인 기도(Effectual Fervent Prayer)

기도의 모범자 바울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나를 감동시킨 두번째 주안점은 기록되어 있는 사도들의 기도 중 대부분이 바울의 마음 속에서 흘러나왔다는 사실이다. 이미 말한 바와같이 이것은 실제로 기대 이상의 만족을 주었다. 만일 누군가 그 이유를 묻는다면 그 대답으로써 여러 가지 이유를 제시할 수가 있다.

첫째로, 바울은 현저하게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였다. 또한 회심하지 않은 때에도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일에 익숙해 있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주로 유대인 신자들을 위하여 진력하였다(갈 2:9). 그러나 이방인은 이교에서 나온 사람들이긴 하지만 그들의 영적인 아버지가 또한 그들의 기도의 모범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은 온당한 사실이었다.

더우기 바울은 다른 모든 사도들이 쓴 것을 한꺼번에 합친 것보다 두 배나 많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편지를 썼으며, 그는 그의 서신에서 그 외의 사람들이 했던 것보다 여덟 배나 되는 것을 기도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먼저 우리는 회심한 후에 바울에 대해 우리 주님께서 제일 먼저 말씀하셨던 것을 생각해야만 한다.

주님께서는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행 9:11)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하면 주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의 그 이후의 생활의 기도를 말씀하신 것인데 그것은 그가 기도의 사람으로 현저하게 구별된 생활을 하였기 때문이다.♡

다른 사도들에게 이 기도의 정신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는 벙어리 자녀가 없으므로 기도하지 아니하는 목사들을 사용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구별된 증거의 하나로 "밤낮 부르짖는 것"을 제시하신다(눅 18:7).

그러나 하나님의 어떤 종들과 그의 성도들의 일부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가깝고 끊임없는 주님과의 친교를 누릴 수 있도록 허락받았는데 요한의 경우 외에는 일찌기 낙원에 이끌려갔던 자가 바로 그와 같은 사람일 것이다(고후 12:1-5).

그에게 특별히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슥 12:10)이 허락되었는데 그는 이전에 그의 동료 사도들과 동등하게 그 기도의 심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것 같다. 그와 같은 것이 그리스도와 그의 신비스러운 몸의 지체들을 위한 그의 사랑의 열정이며 그들의 영적 복지와 성장을 위한 그의 강렬한 열망이었고 하나님을 향하여 그들을 위한 기도와 감사가 그의 영혼에서 밀물처럼 솟아나왔다.♡

기도의 넓은 범위

이 주제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아보기 이전에 이 연구 시리즈에서 사도들의 기원하는 기도를 제한하려는 것이 아니라 폭넓게 받아들이고자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성경의 기도 중에는 단지 우리의 요구만을 하나님께 아뢰는 목적 이상의 것이 내포되어 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더우기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종교에 대한 피상적이고 무지한 것이 그 특징인 오늘날, 기도의 모든 면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주님 앞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펼쳐놓을 수 있는 특권을 제시해 주는 성경 말씀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만일 우리가 이미 받은 자비에 감사하지 아니하고 우리의 아버지께 간구할 수 있는 끊임없는 은혜를 우리에게 부여해 주신 데 대해 그에게 감사하지 아니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관심을 얻을 수 있으며 이와 같은 평강의 응답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미 허락받은 선물에 대한 감사 이상으로 기도가 충만하게 흘러나오게 되면 은혜주시는 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경배와 찬양으로 그 앞에 부복하게 된다.

우리는 당면한 주제를 빗나가거나 기도에 대한 주제를 일반적으로 취급하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감사와 기원보다 선행되어야 할 또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지적해야만 하는데, 즉 그것은 자기를 싫어하며 자신이 무가치하고 죄로 가득한 사람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자와 대등하게 스랍들이 얼굴을 가리우는(사 6:2) 그 앞으로 어느 누구가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가를 스스로 엄숙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피조물로 그냥 있으며 창조주로부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히 먼 거리에 있다.

그가 자신과 그의 창조주 사이에 있는 이 거리감을 깊이 느끼고 하나님 앞에서 무한히 낮은 자리에서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온당하다. 더우기 우리는 본래 피조물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죄가 많은 피조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와같이 우리가 거룩하신 자 앞에 엎드려 절할 때에 이 사실을 깨닫고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직 이 방법으로써만이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그리스도의 중보와 그 공효를 실제적으로 그리고 의미있게 간청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일반적으로 말해서 기도에는 죄의 고백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실 것에 대한 기원과 은혜주시는 자에 대한 경외가 내포되어 있다. 또한 기도의 주된 내용은 굴종(屈從)과 간구와 찬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1:16-19과 3:14-21과 여러 구절뿐 아니라, 고린도후서 1:3과 에베소서 1:3과 같은 한 구절을 이 시리즈의 범위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본다. "하나님을 송축하라"는 구절이 그 자체가 기도의 한 형태인 것은 시편 100:4에서 명백히 나타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다른 많은 예를 제시할 수 있으나 이 하나의 예로 충분하리라 본다. 장막과 성전에 바쳐졌던 향은 한 데 섞여진 여러 가지 향료들로(출 30:34, 35) 만들어진 것이며 지극히 향기롭고 상쾌한 향료로 만든 또 다른 것과 섞여진 것이었다.

향은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의 중재(계 8:3,4)와 성도들의 기도(말 1:11)의 상징이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우리가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굴종과 간구와 찬양이 고루 혼합되어야만 하는데, 두 가지를 제외한 한 가지만도 안되며 세 가지가 모두 잘 혼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기도 p12

● 요한계시록 8장 3,4절.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 말라기 1장 11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 스가랴 12장 10절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