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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147]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최상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147]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최상

En Hakkore 2024. 4. 29. 11:12

하나님의 최상의 복을 즐김(하나님의 최상을 잃어버림 2)

구원받지 못한 이들이 하나님의 최상을 잃는 경우가 있다. 그들이 이 세상에 거하는 동안 그들에게는 앞으로 임할 진노를 피할 기회가 주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설교를 통해서 뿐 아니라 성경으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사 55:6). 같은 이유로 인해 그들에게는 한 문이 열려져 있는데 이 문은 언젠가 그 집 주인이 일어날 때 닫게 될 그런 문이다(눅 13:24,25). 머뭇거림의 위태성을 이 말씀보다 더 명확하게 표현한 구절은 없다.

누군가가 말했다시피 "인간은 천부적인 어떤 것들에 있어서 자기가 가지지 않은 것을 가지며, 하지 않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다. 이것이 모든 것을 정하시고(욥 23:14)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이라면, 다른 것 역시 계획없이 움직이지 않으시며 자의대로 판단하셔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에 일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개선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게으름은 변명이 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이 자초한 물질적, 육체적, 도덕적 재난에 대해서 그들의 부절제가 또한 이 재난의 경감 사유가 될 수는 없다. 나태해서 혹은 편견을 가졌기 때문에 복음의 권고를 듣지 않았다는 것도 변명이 될 수 없다.

"미련한 자는 무지하거늘 손에 값을 가지고 지혜를 사려 함은 어찜인고"(잠 17:16). 여기서 '손에 값을 가졌다'는 말은 기회 혹은 관심이 없어서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튜 헨리가 말한 것처럼 "그는 마음을 다른 데에 두었으므로 자기 의무에 대해 무관심하다. 그는 자기 영혼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를 모르는 사람이다."

세상은 이런 미련한 자들로 꽉 차있다. 그들은 거룩보다 죄를 더 좋아하며, 천국보다 이 세상을 더 좋아한다. "값 비싼 것을 싸구려 물건과 맞바꾸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원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수단인 시간을 아무것도 아닌 것, 아무 만족도 줄 수 없는 것들을 얻기 위해 허비한다"(Thomas Goodwin).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최상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미련한 자는 무지하거늘 손에 값을 가지고 지혜를 사려 함은 어찜인고?"(잠 17:16). 존 길(J. Gill)은 이 말씀에 나오는 지혜를 자연적인 지혜와 지식으로, '값'을 세상적인 물질, 즉 미련한 자가 자기 영혼의 진보를 위한 일보다는 방탕한 일에 소비해 버리는 물질로 보면서 그 누구도 하지 못한 고차원적인 적용을 하고 있다.

"영적인 지혜 그리고 지식, 이것은 성경을 읽고 복음 사역에 자주 참여하며, 복음 사역자 및 성도와 교제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미련한 이들은 이것을 사용하기는커녕 이를 무시하고 경시하며 소홀히 여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생긴다. 왜  그리고 무슨 목적으로 미련한 자에게 그런 은혜의 수단이 제공되는가! 그는 그것에 대해 관심조차 없지 않은가? 그는 지혜를 바라지도 않고 그것을 얻기 위해 값을 지불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뿐인데 왜 그가 낭비할 것을 알면서도 이 값을 하나님이 그에게 밑겨 두시는지 모르겠다."

길(Gill)은 스스로 이 난제에 답하였다. 즉 하나님은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 그들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 영적인 수단과 기회를 주신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피는 그들의 머리에 돌려져야만 하고 그들의 책임은 그들이 하나님의 최상을 잃어버린 데 있다.

그러나 보다 더 유념해야 할 것은 성도등이 하나님의 최상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미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저주 아래 살아가는 것은 여간 슬픈 일이 아니다. 더욱 슬픈 것은 왜 그런 저주가 임하며, 어떻게 회복될 수 있는지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신약성경이 분명히 밝히고 있는 바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얼마 동안은 '잘 달렸는데', 그들은 방해하는 어떤 것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성경을 읽어 보면 성도의 대부분이 처음에는 "주를 온전히 좇다가"(민 14:24) 얼마 후 '그들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에 그들은 성령님의 권고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말씀의 요구대로 자기들의 삶을 변화시켰다. 그러다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는 요청을 받자 그들은 그 자리에 멈춰섰다. 그러자 성령님은 슬퍼하셨고, 그의 능력은 거두워졌으며 평화와 기쁨이 쓰러지고 영적인 쇠퇴기가 시작되었다.

그들이 자기 잘못을 하나님 앞에서 시정하지 않을 때에는, 즉 자기들의 실패를 회개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자복하지 않을 때에는 그들에게 진노의 매가 임하였다. 그러나 매를 맞고 "연달한 자"(히 12:11)가 되기는커녕 어떤 이들은 그 때를 '자기의 운명'이라고 여기고 이를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