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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116] 그리스도인의 삶의 진보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116] 그리스도인의 삶의 진보

En Hakkore 2024. 4. 26. 11:45

제 7 장 금욕의 교리(개요 8)

오웬이 말한 것처럼 '도끼로 나무를 찍어야'한다. 여기서 '몸'은 두 가지를 의미하는 것 같다.

첫째는 악한 본성, 혹은 내재하는 죄로서, 로마서 6:6,7:24에 몸에 대해서 언급된 것과 같을 것이다. 즉 '육체는 죄의 몸이다. 우리의 영혼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부패한 육신이다. 그래서 성경은 "땅의 있는 너희 지체를 죽이라"(골 3:5)고 하는 것이다. "몸의 행실"은 부패한 본성이 만들어내는 행위, 즉 우리의 죄다. 이처럼 여기서의  '몸'은 객관적으로 '육체'이다.

둘째로, 여기서의 '몸'은 영혼이 지금 거하고 있는 집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죄의 타락케 하는 악성(惡性), 즉 사람들로 하여금 영혼이 없는 것처럼 살게 하는 성질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죄의 성향, 즉 우리의 가장 천한 부분을 기쁘게 해 주고 만족시키며, 영혼을 육체의 하수인이 되게 하려는 죄의 성향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육체는 영혼이 활동하는 데 사용하는 수단이 됨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타락했다는 사실은 주로 외적인 지체들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내재하는 죄가 주로 발견되는 곳은 바로 육체 거기인 것이다. 죄는 '몸의 행실' 이라고 명명되고 있다. 왜냐하면 육체의 정욕은 그 열매가 몸의 행실이고, 몸의 행실을 제거하면 죄가 제거되기 때문이다(롬 6:12).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를 아름답게 꾸밀 것이 아니라 쳐죽여야 한다. 그것의 충동을 거절해야 하며, 육체가 원하는 것을 부인하고 굶겨 죽여야 한다. 그러나 본성의 일이 아니고 전적으로 영의 일인 이 일을 넉넉히 감당할 자가 누구인가?

신자는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이 일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이다. 교회의 의식 자체가 그 일에 효력을 미치지도 않는다. 또한 이 일은 설교자의 능력이나 영역 밖의 일이다. 전능하신 힘만이 이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해 준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다시 말해서 로마서 8:9의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이시다. 그분은 그 본성에 있어서만 거룩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사역에 있어서도 거룩하시다. 그분은 금욕의 중요한 원동력이시다. 우리에게 그런 도움자를 주신 은혜에 놀라운 심령으로 경배하자!

우리가 선택을 받고 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성령의 사역에 힘 입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가 성령님께 빚진 자라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하자. 비록 은혜가 거듭난 사람의 마음 속에 역사하지만, 그것을 행하시는 권세는 성도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은혜를 주신 이가 그 은혜를 새롭게 하시고, 자극하시고, 지배하는 것이다.

성도가 자기의 내적인 규율과 훈련으로 금욕을 실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정 기간 동안 그들의 악한 습관을 제어하고 억누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님이 그들에게 힘을 주지 않으시면 진정한 금욕을 할 수는 없다. 그러면 성령님께서는 어떻게 그 일을 행하시는가?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로, 우리가 거듭날 때 성령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본성을 주신다. 그리고 그 본성을 키워주시고 보호해 주신다. 그는 우리의 속 사람을 그의 능력으로 강하게 하신다. 날마다 은혜를 새롭게 공급하신다. 죄를 싫어하게 하시고 슬퍼하게 하시고 그것에서 돌아서게 하신다.

그리스도의 요구를 보이셔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그를 좇게 하신다. 우리 마음에 어떤 제안을 하기도 하시며 때때로 경고하신다. 마음 속에 약속을 확인하시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도록 인도하신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읽어 보라 "성령님이 금욕하신다". 혹은 "성령님이 너희를 통해 몸의 행실을 죽인다"고 하지 않고 "만일 너희가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은 여기서 수동적인 입장이 아니라 능동적인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가 졸고 있어도, 우리가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행동을 지켜보지 않아도 우리가 우리의 죄를 금해야겠다고 원하거나 기도하지 않아도 성령임이 우리를 도우실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 일에 심각하게 참여해야 할 주체는 바로 성도인 것이다.♡

성령님이 가능케 해주시지 않으면 우리가 이 일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부지런히 노력하지 않으면 성령님도 우리를 돕지 않으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게으른 그리스도인은 그가 자기 정욕을 이기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꿈 꾸지도 말아야 한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