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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118] 그리스도인의 삶의 진보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118] 그리스도인의 삶의 진보

En Hakkore 2024. 4. 26. 11:46

제 8 장 주의 일(1)

본 장에서는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8)는 말씀에 대해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지적하고, 그 바른 의미를 설명하고자 한다.

성급하고 부주의한 세대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주를 위한 일"이라고 읽고는 소위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봉사'라는 슬로건을 위해 그 말씀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그 봉사의 대부분은 비성경적이다. 종교적인 활동의 형태를 통해서도 육체의 에너지는 발산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교만하고 철면피 같은 세대는 자기네가 주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말을 쉽게도 잘하며, 하나님이 자기네들의 은혜를 입고 있으며 자기네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은 성취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기만성이 이 정도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들은 쉽게 자기들이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말하기도 하고 저술하기도 한다. 이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나타났던 이기적이고도 교만한 영(계 3:17)이 또 다시 나타난 것으로 오늘날의 유행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아마 이렇게 물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성경에 성도가 '하나님의 동역자'다. 혹은 적어도 복음 사역자는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말하고 있지 않느냐고, 그 질문에 대해 힘주어 대답하건대,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그들 주장의 근거로 삼는 성경 구절이 두 개 있는데 바르게 살펴보면 그 성경 구절이 그런 교훈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첫번째가 고린도전서 3:9의 말씀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헬라어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으면 이렇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이다. 동역자며, 하나님의 경작지며, 하나님의 집이다."

사도는 하나님의 어떤 종을 다른 종들보다 높이는 것(고전 3:4)에 대해 고린도교회를 책망하였던 것이다(고전 3:1-3). 사도는 그들에게 주지시켰다.♡

첫째로, 사역자는 '종' 혹은 하인이며, 하나님이 그들의 사역에 복 주시고 "자라나게 하지 않으시면"(6,7절)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도구(연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역자는 "심은 자"와 "물을 준 자"가 하나이며(8절) "각각 자기의 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역자가 다른 사역자보다 더 존경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지적하셨다.

한편 9절에서는 그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지정하시고 또 준비시키시는 것이며, 그들은 '동역자'. 즉 하나님의 복음의 들판에서(그들의 일터에서) 서로 동역자가 된다는 말로서 말을 맺고 있다.

그 두번째 성경구절에는 지금 우리가 반박하고 있는 문제, 즉 인간의 교만성의 색체가 훨씬 적게 나타나 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고후 6:1). 여기서 '하나님과 함께'라는 구절은 본래 원문에는 없던 말인데 번역가들이 보충해 넣은 말이다.

이 구절은 복음 사역의 도구로 부르심을 받은 동역자들이 죄인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하고 권하고 있는 말씀이다.

하나님과 '동역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동업하셔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전능하신 이가 무슨 도움을 필요로 하신단 말인가? 하나님은 자원하셔서 남의 도움을 받지는 않으신다(욥 22:2,3; 눅 17:10). 유한한 자가 무한하신 분을 원조하다니 말도 안되는 것이다! 기껏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고, 우리의 빈 그릇을 겸손히 들고 나아가 채워주시기를 바라며 그분 앞에 서는 것뿐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대리인으로 고용하시며, 그분의 영광을 우리에게 주신다면 이는 하나님의 겸손이실 뿐이지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다. 주님만 유일하신 사역자이시다. 항상 그런 것이 아니지만 주님은 가끔 우리를 그 통로로 사용하신다. 이 때의 사역은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종속되는 것이다.

벌레와도 같은 존재가 지극히 높으신 분과 '동역'한다는 생각이 특별히 역거운 느낌을 주는 것은 그가 자기를 창조주와 같은 위치에 올려놓기 때문이다. 겸손히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라면 이처럼 기괴한 거짓말을 혐오하며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도 바울의 머리 속에 꽉 채워져 있던 생각은 아주 달랐다. 그는 말한다.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주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사명을 맡기셨을 때,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셨다"(막 16:20). 만일 주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셨다면 그들의 수고는 아무 열매도 맺지 못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한다"(롬 15:18)고 선언하면서 영광을 돌려져야 할 곳에 돌리고 있다. 자신을 하나님의 동역자로 생각하는 것과 이 얼마나 큰 차이인가? 그것은 주님을 교회 밖으로 쫓아낸 자의 헛소리일 뿐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