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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115] 그리스도인의 삶의 진보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115] 그리스도인의 삶의 진보

En Hakkore 2024. 4. 26. 11:44

제 7 장 금욕의 교리(개요 7)

죄의 정욕이 금욕되지 않고 있는 동안은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질 수 없다. 정욕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멀게 하고, 우리의 감정을 혼란케 하며, 우리 영혼을 파괴하고, 우리의 기도에 대해 하나님이 그 귀를 막으시도록 한다.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겔 14:3). 금욕하지 않는 영혼을 하나님이 기뻐하실 리는 만무하다. 금욕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본성에 위배되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 이에게 기쁨이 있을 수 없으며, 그런 이가 하나님을 바라볼 리가 없다. 죄는 진흙탕이다. 진흙이 많이 묻을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눈에 들지 않게 된다(시 40:2). 죄는 문둥병이다(사 1:6). 문둥병이 많이 퍼지면 퍼질수록 하나님과 우리와의 교제는 줄어든다.

죄를 간직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것이며, 지극히 높으신 분께 선전포고하는 것이다. 금욕하지 않는 죄는 복음의 전체 의도에 반대된다(마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출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죄에 빠진 우리로 제멋대로 하게 하신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최종 목표는 죄를 없애는 것이다. 그 일을 위해 그분이 생명을 내어 놓으셨다.

성도들은 예수와 함께 일으켜져 그 생명이 하나님 안에 감취어진 바 되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금욕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골 3:1-5). 사도가 특정의 집단을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놀라게 된다.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 그리고 또 8절에는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니라"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악하고 거대한 죄를 금하라고 그리스도인에게 말씀하시나니! 우리는 놀라며 엄숙해지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이상의 것들은 필수적인 것만 말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그는 많이 부패하였다. 따라서 그는(이처럼 크고 무서운) 죄들을 습관적으로 짓는 것이다. 마귀는 시험을 걸어 마침내 그의 부패한 심성이 외적인 행위로 나타나게끔 한다. 손을 꽉 움켜쥐고 마귀의 시험을 끝없이 금욕을 통해 주시하지 않는 한 마귀는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 외에는 진리로 마귀를 막아낼 자가 하나도 없다.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요 14:30).이 마귀는 화전으로 공격을 해 오는 놈이다.

하나님의 사자가 재촉할 때 롯은 스스로 판단하기를 이는 작은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는 작은 성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창 19:20)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진실된 목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를 과소평가하지 않도록, 또 그들이 '어휴, 그렇게 큰 죄를 내가 어떻게 질 수 있어요?'라고 말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 갑자기 큰 죄에 빠지게 되는 것은 그의 자만심과 부주의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자가 살인하지 말라,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말라, 믿음에서 돌아서지 말라고 경고하실 때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는 하사엘의 길을 갈 것이다.

"당신의 개같은 종이 무엇이관데 이런 큰 일을 행하오리까"(왕하 8:13). 매일 금욕함으로써 주님의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서 우리가 어떻게 그런 죄를 지을 수 있겠느냐고 하는 것보다 더 크고, 모욕적이며, 악한 죄는 없다. 그런데 왜 '몸의 행실을 죽여야' 하는가? 여러 구절을 상고해 볼 때 이 구절은 '육체를 죽이라(금욕하라)'는 의미인 것 같다.

7장과 8장 첫 구절에서 사도는 내재하는 죄가 모든 악행의 원천이라고 했다. 그리고 여기서는 부패의 뿌리와 가지를 모두 적이라고 하면서 의무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몸의 행실은 단순히 외적인 행위로만 보아서는 안되고 그것의 원천까지도 포함해서 이해해야 한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