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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114] 그리스도인의 삶의 진보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114] 그리스도인의 삶의 진보

En Hakkore 2024. 4. 26. 11:43

제 7 장 금욕의 교리(개요 6)

육체를 따라 사는 이들 모두 직면하게 될 그 두려운 무덤을 이처럼 명백하게 경고해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라.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대해 우리는 원망할 것이 아니라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보라. 자기 자신을 즐겁게 하는 생활을 계속하는 것은 인류의 배교를 더욱 증가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창세기 2:17의 원초적 징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다. 그 모욕의 죄는 모욕을 받으시는 그분의 위대성으로 저울질을 당하게 될 것이다(삼상 2:25).

더구나 그들은 치료받기를 거절했다. 그러므로 죄가 자중된다. 유혹의 엄청난 세력을 재갈 먹이시기 위해 큰 심판을 지정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보라. 죄악의 기쁨은 잠시지만 죄의 길은 영원하다. 죄의 길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믿는다면 잠시 동안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죄의 길을 쉽게 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라. 금욕하지 않는 영혼은 그분께 합당치 않다. 성도는 먼저 은혜를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확신해야만 하늘 나라에 합당하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입구조차 찾지 못하는 것이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3). 이 말씀은 "육체에게 빚지지도 않았는데 육체를 따라 사는"(12절) 신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사실 그들은 그들을 구원하신 그리스도께 빚진 자들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광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 빚진 자들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그분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야 한다.

여기서 잠시 '금욕한다' 는 말의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육체를 따라 산다"는 말 속에서 그 부정적 혹은 소극적인 의무를 발견할 수 있다. "육체를 따라 사는 것"은 내 속에 거하는 죄의 지배를 완전히 받는 것이며 부패성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금욕은 그와 정반대의 행위들이다.

즉, 옛 본성의 요구를 따르지 않는 것이며 도리어 그것을 정복하는 것이다. 당신의 정욕을 소중히 여기거나 거기에 충실하지 말라. 그것들을 굶기라.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

우리 육체의 천성적인 욕망들과 식욕은 훈련되어질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 우리의 하인이 되게 해야 한다. 그것들을 조절하고, 규제하며, 종속시키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그러나 육체의 죄에 대한 욕망은 즉각 거절되어야 하고, 엄격히 부정되어져야 한다.

우리가 악한 정욕에 얼마나 굴복하느냐애 따라서 우리의 영적인 생활은 방해를 받기도 하고 받지 않기도 한다. 악한 본성은 그리스도인 안에 오랫동안 계속 머무는 것이기 때문에 바로 여기서 금욕의 필요성이 긴급히 요청된다. 그리스도를 믿자 마자 그리스도인은 율법의 저주에서 즉시 벗어나 죄의 지배로부터 벗어난다.

그러나 '육체'는 근절되지 아니하며, 악한 본성은 계속된다. 그가 이 땅에 살아있는 한 이 더러운 샘물은 계속 솟아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육체는 항상 하나님과 거룩에 대하여 적개심을 품고 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혹은 새로운 본성)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갈 5:17). 그리하여 성도의 내부에서는 내재하는 죄와 은혜 사이에 끝없는 전쟁이 계속된다. 따라서 성도는 부패한 행위뿐 아니라 그 원리들에 대해서까지 늘 금욕하고 혹은 그것들을 쳐죽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성도는 끝없는 전쟁에 참전하여 우리를 육체의 정욕의 포로로 삼으려는 시험들과 싸우고 있다. 성경은 금하고 있다.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동맹을 맺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엡 5:11). 에브라임은 말했다.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호 14:8)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