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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실천 54] 그리스도인의 출발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54] 그리스도인의 출발

En Hakkore 2024. 4. 20. 10:49

5. 하나님의 제작품(10)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고전 2:13)하므로 "성경을 상고"(요 5:39) 해야만 한다. 이것은 필연적인 행위이다. '은혜의 이적'과 '위대한 변화'의 여러 국면들을 밝히기 위하여 대조된 25개의 성경구절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우리들의 주의를 끌었다.

어떤 구절들은 지각의 열림(행 26:18)과 양심의 깨달음(롬 7:9)과 심령의 갱신(겔 36:26)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고, 또 다른 구절들은 의지의 복종(시 110:3)과 사상의 복속과 우리 심령에 새겨진 하나님의 법 등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구절들에는 은혜의 이적이란 온전케 하는 것이며(고전 6:11), 위대한 변화란 점진적인 과정이라고 묘사되어 있다(고후 3:18; 빌 1:6), 또 다른 구절들에는 전달된 내용물(롬 5:5)들과 창조(엡 2:10)와 중생(딛 3:5)과 그리고 부활(요일 3:14)의 용어들이 설명되어 있다.

그러면 당신의 사역(His work)을 묘사하실 때, 성령께서는 왜 그다지도 다양한 용어와 표현들을 사용하셨을까요 라고 질문할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대답이 예상된다.

첫째 대답은, 본질적으론 하나이지만 사역 그 자체의 다양성 때문이다.

사역의 대상은 복잡한 피조물이며, 전구원과정 동안 그 복합체는 모든 부분에 영향 받는다. 죄가 우리 각 지체에 해를 끼치고 창조주가 우리에게 수여한 각 기능을 부패시키듯 갱생과 변형을 유발하는 은혜도 우리 모든 지체와 소유한 모든 기능을 순화시킨다.

사도 바울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살전 5:23) 간구했을 때, 사도는 하나님께서 이미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그들을 은혜로써 온전케 하시기를 부탁하는 것이며, 또한 동시에 특별한 표현들을 사용함으로써 위대한 은혜의 이적의 포용성과 완전성에 관해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많은 마면(磨面)으로 이루어진 보석과 같아서 한 국면에만 우리 시선을 한정시킨다면 잘못된 평가를 내리게 될 것이다.

두번째 대답은, 하나님이 판에 박은 방법으로 죄인을 구원하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경고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단일성보다는 다양성이 창조와 섭리와 은혜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역방식을 보다 잘 나타낸다. 계절도 다양하고, 나무들도 각각 다른 열매를 맺는다.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이라는 점에서는 동일시하지만, 내용과 특성은 얼마나 다양한가! 레위기와 시편, 룻기와 에스겔, 그리고 로마서와 요한계시록 등은 각각 얼마나 다른가! 주 예수께서 소경들을 고쳐주신 방식들은 또 얼마나 다양한가!

그런데 수단은 달랐지만 결과는 언제나 동일했다. 또 요한복음 3장에 종교지도자 니고데모를 대하신 태도와 4장에서 부정한 여인을 대하신 태도는 얼마나 다른가! 니고데모에게는 거듭나야 할 필요성을 명령조로 역설하셨지만, 그 여인에게는 하나님의 선물에 관해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위대하신 하나님은 어떤 법칙에도 얽매이시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는 식의 어떤 생각조차 품어서는 안된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실수하는 것이다.

세번째 대답은 은혜의 이적이 그것에 대해 호의적인 사람 모두에게 본질적으로 동일한 의미를 가진 것이긴 해도 그 이적의 역사가 표현될 떄 언제나 동일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방식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작품 역시 다양하다. 이 점은 물질세계도 마찬가지이다. 풀의 이파리나 심지어 모래 알맹이조차도 똑같이 생긴 것은 없다. 그런데 영적 세계에는 이상한 풍조가 있다. 진짜 중생한 사람은 하나의 특정한 패턴에 일치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모조품으로 의심한다.

이것은 그렇지가 않다. 거룩한 새 예루살렘 성의 열 두 기초석에는 어린 양의 십 이 사도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모두 '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그 각각은 얼마나 다른가!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세째는 옥수요, 네째는 녹보석이요...(계 21장).

색과 크기와 화려함에 있어서 다 다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각각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엡 4:7 다른 정도의 신앙과 은혜를 소유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에 관해 저술한 사람들은, 특히 그 사역의 첫째 항목인 중생을 설명할 때, 다양한 용어를 사용한다.보통 그 용어들은 각자의 교파에서 유행하는 용어들이다. 각각의 교파는 어느 정도 독특한 전문술어를 나름대로 소유하고 있다.

그것은 진리의 어느 특정부분을 강조한 결과이다. 심지어 모든 정통주의자들이 다 수납하는 교리를 다룰 때도 발음상 또는 강조상 다양하게 표현한다. 따라서 어떤 교파에선 '효력있는 부르심'(effectual calling)이란 말로 대신한다. 사실 이 말 속에는 효력있는 부르심의 의미를 전연 찾아 볼 수 없다.

또 제3의 그룹은 그것을 '심령의 변화'(a change of heart)라고 묘사한다. 그리고 용어를 아직 확정짓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려는 욕망으로 '구원받음'(being saved)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사실 각각의 표현들은 모두 정당하다. 그리고 중생 경험 그 자체에 대한 적합한 개념에 도달하려면 그 용어 전부를 결합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 연약한 이해가 하나님의 백성들 내부에 발생한 위대한 변화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을 돕기 위해, 성령님은 심사숙고하셔서 영적 실재들을 표현하실 때 독특하고 다양한 용어들을 사용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유사용어들을 수집하여 근면하게 대조하여 하나 하나를 깊이 묵상해야 하며, 더 나아가 그 용어들 모두가 '은혜의 이적'에 포함된 것임을 이해해야만 한다.

전체 목록작성은 불가능하므로 다음 몇 구절만 제시해 본다. 이것들은 경험적 구원을 잘 묘사하고 있는 주요 구절들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ㅔ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신 30:6).

죄를 사랑하는 부패한 성질 제거수술은 영혼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려면 먽저 그 수술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마음을 할례한다는 표현은 신약성경 로마서 2:29과 빌립보서 3:3에서도 발견된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즐거이 헌신하니"(시 110:3).

선민(選民)들이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멍에를 자의로 걸머지기 전에 먼저 전능자의 능력이 역사했음에 틀림없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