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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구원 49] 지적 능력을 통하여 그리스도께로 나아감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구원 (Doctrine of Salvation)

[영적인 구원 49] 지적 능력을 통하여 그리스도께로 나아감

En Hakkore 2024. 4. 13. 07:56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정확히 알기 위해서 대단히 고민하여 열심히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그 말을 자주 읽기도 하고 듣기도 하였을 것이다. 또한 많은 설교자들이 그들에게 '그리스도께로 나오라'고 말하면서도 그 말의 성경적 의미에 대해서는 설명해 주지 않았을 것이다.

성령께서 그들을 깨닫게 해 주사, 그들의 비참한 상태와 일생 동안 하나님께 대하여 거역하고 반역한 것을 알고 자기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깨닫고 구원을 얻기 위하여 진정으로 그리스도께로 나오기를 원하는 자들은 그 일이 자기들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아,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 발견할 곳을 알꼬 그리하면 그 보좌 앞에 나아가리라"(욥 23:3)고 부르짖는다. 사실상 하나님의 '무리'는 '적은' 무리일뿐이기 때문에(눅 12:32) 그러한 경험을 해 본 자는 많지 않다. 또한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대다수가 그들이 '그리스도께로 나오는 것'이 매우 단순한 문제로 알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랑하는이여, 우리는 요한복음 6:44말씀의 분명한 빛 속에서 당신을 확신시켜주고자 한다. 즉, 당신이 '그리스도께로 나오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 알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ㅇ이 영적이고 구원에 이르는 방법으로 그리스도께 나온 것이 결코 아니라는 증거이다. 그러면 '그리스도께로 나온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첫째로, 소극적인 면에서 설명해 보면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지체를 사용해서 수행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사실은 너무 명백하기 때문에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대하여 영적으로 무지하고 육적으로 타락한 이 무서운 시대에서는 지극히 기본적인 진리와 용어들에 대한 설명이 절실히 요구된다.

수많은 귀중한 영혼들이 '참회자의 좌석'에나 '고해좌석'에 나아가는 것이나 어떤 설교자의 팔을 붙드는 것이 그리스도께로 나오는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하여 미혹당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 명백하고 단순한 용어를 정의하는 일을 간과할 수 없으며 그 말이 의미하고 있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로, 여기에서 사용되어진 '오다'라는 단어는 비유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육체의 행동을 묘사하는 말로서 표현된 그 단어는 영혼의 행위를 뜻하는 말로서 영혼에 적용되는 단어이다. '그리스도께로 나온다는 것'은 성령의 조명을 받음 마음이 가르쳐 주시는 선지자, 속죄와 중보의 일을 하시는 제사장, 다스리시는 왕이신 주 예수께로 나온다는 뜻이다.

그리스도께로 나오는 것은 세상에 등을 돌리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의 유일한 소망과 기업이 되시는 그리스도께로 돌아서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아 속에 있는 어떠한 것에도 더 이상 의뢰하지 않기 위해서 자아의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우상과 다른 모든 의존물들을 포기하는 것이며 믿음직하게 여기는 자신감을 의뢰하기 좋아하는 상태에서 그 마음이 그리스도께로 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의지를 굴복시키는 것이며 기꺼이 그의 멍에를 받아들이고 십자가를 지며 사양치 않고 그를 따르는 것이다.

'그리스께로 나오는 것'은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 온 백성이 흠 없으신 그리스도께로 돌아서는 것이다. 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사랑하고 봉사할 수 있도록 초자연적으로 그리스도께로 이끌림을 받는다. "그리스도께로 나오는 것은 지치고 무거운 짐을 진 죄인들의 의무이며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리스도께 반대하거나 대항하는 편에 있는 모든 일들을 포기하면서 우리는  의사이시며 대변자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의 인내와 지배를 받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포기해야 하고 그에 의해서 그의 방법으로 그의 말씀에 의지해서 기꺼이 구원 받으려고 해야 한다"(매튜 헨리).

Arthur W. Pink 영적인 구원 p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