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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96] 이삭의 탄생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96] 이삭의 탄생

En Hakkore 2024. 3. 19. 10:59

우리는 아브라함에게는 선택의 두드러진 실례를, 그리고 이삭에게는 아들됨(sonship)의 보배로운 진리를 발견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고 부름받은 사람이었으며, 이삭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약속되고 태어난 사람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에베소서 1:4-5을 읽어 보라.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상징적으로 이삭은 우리 앞에 거듭남을 제시한다. 이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로, 이삭이 태어날 수 있기 전에 먼저 자연(nature)의 능력과 활동이 종말에 이르러야 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스스로에 대해 종말에 이르렀다. 아브라함의 몸은 "죽은" 것 같았으며, 사라의 태 역시 마찬가지였다(롬 4:19). 그러므로 이삭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의해 죽은 것이 다시 살아나야만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진리를 시큰둥하게 생각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가 그러한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만들어 준다. 자연인(自然人)의 상태는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쁘다. 그는 본성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죄인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엡 4:18).

한 마디로 죄인은 허물과 죄로 죽었다. 아버지는 탕자에 대해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자연인에 대해 문자적으로 사실이다(눅 15:24).

자연인이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것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엄중한 실재이며, 두려운 사실이다. 오늘날의 수많은 거짓 가르침들의 뿌리에 바로 이러한 사실에 대한 무지(無知)와 부인(否認)이 있다. 자연인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교육이나 개선이 아니라 생명이다.

그것은 그가 죽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는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진리는 얼마나 자주 간과되는가! 자연인의 두려운 상태는 오늘날 그럴듯한 모습으로 포장되고 가려진다.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은 인간 본성의 완전한 파멸과 전적인 부패를 계속적으로 고수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치명적인 결함이다. 자신들의 잃어버린 상태를 깨달을 때까지, 죄인들은 결코 구주의 필요성을 알지 못할 것이다. 또 자신들의 죄 가운데 죽었음을 깨달을 때까지, 그들은 결코 자신들의 잃어버린 상태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죄인에 대하여 성경이 "죽었다" 고 말할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것은 자연인에게 터무니없는 소리처럼 들릴 것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전 2:14).

자연인에게 자신은 충분히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라고 말한다(딤전 5:6). 우리 주님이 선한 사마리라인에 대해 말씀하실 때 사용하신 표현의 의미를 여는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거기에서 우리 주님은 자연인의 상태를 강도 만난 자의 상징으로 묘사한다. 그는 옷이 벗겨지고 상처를 입은 채 길가에 버려졌다. 그리고 주님은 그를 "거의 죽었다"고 표현하셨다(눅 10:30). 여기에서 이러한 표현이 얼마나 정확한 것인지 주목하라.

죄인은 "거의 죽었다"(half dead). 그는 사람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살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죽었다. 죄인은 자연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도더적으로 살았다. 그러나 그는 영적으로 죽었다. 바로 이것이 새로운 탄생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으로 표현되는 이유이다(요 5:24).

이삭이 태어날 수 있기 전에 먼저 아브라함과 사라의 죽었던 것이 다시 살아나야만 했던 것처럼, 죄인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기 전에 먼저 하나님에 의해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야만 한다.

둘째로, 이삭이 잉태되기 위해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셔야만 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브라함의 몸은 "죽은" 것 같았으며, 사라 역시도 오래 전에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그들이 아들을 가질 수 있었는가? 그런 말을 들으며 사라는 웃었다. 그러나 자연의 범위를 초월하는 것 역시 신적 능력의 범위 안에 있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창 18:14). 그런 일은 결코 없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렘 32:17).

이것은 이삭과 마찬가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러하다. 우리가 거듭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셔야만 한다. 우리는 이 점을 분명히 해야만 한다. 거듭남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役事)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이것은 오늘날 특별히 강조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설교자들이 거듭남을 그릇되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새로운 탄생" 은 계속적인 개선(改善)의 과정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탄생은 단순히 마음을 고쳐먹으면서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탄생은 단순히 종교적 모임에 나가 설교자와 악수하는 것 훨씬 이상이다.

그것은 단순히 등록카드에 서명하고 "교회에 가입하는" 것 훨씬 이상이다. 새로운 탄생은 창조주의 창조적 행동이다. 그것은 영적 생명을 나누어 주는 것이며, 우리에게 신적 본질 자체가 전달되는 것이다. 💕

여기의 아브라함과 사라를 생각해 보라. 지금 그들은 거의 100세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들은 아들을 간절히 열망했다. 그렇지만 그들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하나님이 오셔서 기적을 행하셔야만 했다.

이와 같이 자연 안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자연인은 단지 잃어버린 죄인일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죄인이다. 도움이 온다면, 그것은 밖으로부터 와야만 한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다.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