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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93] 우리 모두의 조상인 아브라함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93] 우리 모두의 조상인 아브라함

En Hakkore 2024. 3. 19. 10:57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다루신 그와 같은 놀라운 실례들은 그의 주권을 놀랍게 나타낸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특별한 존귀를 주셨다. 그를 선민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택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이 어떤 나라인가? 그 나라를 통해 장차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 아닌가?

여기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당신이 택하신 한 인물 안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주목하라. 아브라함에게는 그렇게 선택될 만한 자격이 전혀 없었다. 혈통적으로 그는 우상을 숭배하는 가족 가운데 속했다. 또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갈대아를 떠나기 전에, 그는 아내와 더불어 악한 약속을 했다(창 20:13).

이와 같이 아브라함에게는 특별하게 선택될 만한 아무런 자격이 없었다. 훗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무런 자격도 없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사 51:1, 2).

우리 모두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모범 혹은 본보기였다. 하나님이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신 것은 우리 안에 어떤 선이나 공로를 미리 보셨기 때문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은혜"로 말미암는다(롬 11:5).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이다. 그것은 주권적인 은혜이며, 값없이 베풀어지는 은혜이며,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은혜이다. 💕

다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서의 아브라함을 살펴보도록 하자. 아브라함의 일생은 참으로 파란만장한 일생이었다. 그는 편안한 꽃침대 위에서 호사를 누리도록 하락되지 않았다. 그가 견디도록 부름받은 시련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계속해서 그는 물과 불을 통과했다. 그러나 그 곁에는 항상 하나님이 계셨으며, 하나님은 그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믿음의 조상으로서 아브라함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신자의 표본이었다. 그가 경험한 것들은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과 동일한 것이었다.

믿음은 시련의 과정을 통해 인내의 열매를 맺는다. 불순물이 섞여 있는 금이 정금으로 정련(精練)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풀무를 통과해야만 한다. 하나님에게는 한 명의 죄 없는 아들이 있다. 그러나 고난과 슬픔이 없는 아들은 단 하나도 없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며, 당신이 받으시는 모든 아들을 채찍질하신다.

먼저 아브라함은 자연적인 유대(紐帶)의 끈들이 끊어지는 것을 견뎌야만 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고향과 친척을 떠나야만 했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마 10:37).

아브라함은 자신이 태어난 땅을 떠나라는 부르심에 응답하여 이방 땅에서 외인과 나그네가 되었으며, 그럼으로써 자신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을" 배우게 되었다(빌 3:20).♡

또 아브라함은 자신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 사이의 다툼으로 인해 조카와 나누어질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러한 사실은 그에게 믿음의 길은 종종 홀로 걸어가는 고독한 길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그와 같이 우리도 육체가 좋아하는 것들로부터 떨어져 걸어가야만 한다.♡

또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을 얻기 위해 그가 기다린 오랜 시간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준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만 한다는 교훈이다.♡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와 같이 우리도 우리의 모든 것을 그의 처분 아래 놓도록 부름을 받는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여기의 아브라함처럼 아무것도 잃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신자들이 조상에게 역사(役事)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라. 징계 가운데 나타난 그 사랑은 마침내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었다.(히 12:11) 이러한 보석에는 많은 단면(斷面)들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그의 주권과 그의 사랑이 아브라함에게 어떻게 나타났는지 살펴보았다.

이제 그의 비할 데 없는 은혜를 살펴보도록 하자. 비할 데 없는 은혜! 이것은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당신의 "벗"으로 삼은 것은 얼마나 큰 은혜인가! 아, 이것은 하나님의 얼마나 큰 낮추심인가! 창조주께서 피조물과 더불어 그토록 친밀한 관계를 맺으시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은혜가 아닌가!

그를 "하나님의 벗"으로 만든 것은 아무런 자격도 없고 공로도 없는 자에게 베풀어진 값없는 호의(好意)였다. 이러한 친밀한 관계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생각해 보라. 하나님이 그의 "벗"에게 훗날 그의 자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어떻게 알리셨는지 보라(15:13-16).

또 그가 소돔에 행한 일을 알리실 정도로 그의 벗을 신뢰하신 것을 생각해 보라(18:17). 또 하나님이 아브라함과의 친밀한 교제가운데 그의 식탁에서 먹고 마신 것을 생각해 보라(22장). 모리아 산에서의 아브라함만큼 갈보리에서의 아버지의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낸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이 예표하는 것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우리는 구약의 인물들 가운데 아브라함만큼 여러 가지를 예표하는 인물을 알지 못한다.♡

첫째로, 그는 아버지의 모형이었다.

이것은 그가 아들을 간절히 열망한 것에서(엡 1:5과 비교하라), 이삭이 젖을 뗄 때 "잔치"를 배설한 것에서(마 22:2-4과 비교하라).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것에서(요 3:16절을 비교하라), 아들을 위해 신부를 준비한 것에서(창 25:5 나타난다.

둘째로, 아브라함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것에서,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서 그가 이스라엘 친족(구속자)이라는 사실 안에서, 그리고 그가 열방의 주권을 가진 자라는 사실에서 나타난다.

셋째로, 그는 교회의 모형이었다.

이것은 특별히 그가 땅에서 외인과 나그네였던 사실에서 나타난다. 갈대아 우르에 있는 자신의 길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나안에서 새로운 집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장막의 사람이었다. 이러한 사실이 그의 생애의 끝 부분에 어떻게 나타났는지 생각해 보라.

매장지가 필요했을 때, 그는 헷 족속으로서 그것을 샀다(창 23:4). 그는 그것을 이방인들로부터 선물로 받기 보다 돈을 주고 사기를 더 좋아했다. 모든 재물을 취하라는 소돔 왕의 제안을 거절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그들로 말미암아 치부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이 그 땅에서 외인이었던 것은 또한 그가 이삭을 위해 아내를 준비한 것에서도 나타났다. 그는 가나안에서 외인이었으므로 아들이 아내를 찾기 위해 하란으로 자신의 종을 보냈다. 이와 같이 가나안에 장막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땅의 백성들과 분명하게 구별되었다. 그는 그들 가운데 있었지만, 그들에게 속하지 않았다.

넷째로,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모형이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팔레스타인을 기업으로 받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에서, 그가 하나님과 더불어 언약을 맺는 자였다는 사실에서, 이방 나라에 거하는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보호를 받았다는 사실에서(창 20장), 그리고 파란만장한 생애 가운데 오랜 세월 초자연적으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에서 나타났다.

부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내가 보는 것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믿음을 따라 행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우리가 외인과 나그네로서 세상으로부터 온전하게 분리되며, 하나님에게 기꺼이 순종하며, 그의 뜻에 온전히 순복하며, 그의 처분에 모든 것을 맡기면서 살게 되기를 기원한다.

그럴때 우리는 아브라함과 함께 의인의 길이 "돋는 햇살처럼 크게 빛나 한낮의 광명에 이르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잠 4:18). 💕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