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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64] 아브라함을 부르심(창세기 12장) 본문
우리는 마침내 창세기에서 매우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믿음의 자녀들을 위한 중요한 교훈들로 가득 차 있는 부분에 도착했다. 그것은 창세기 전체의 세 번째 큰 단락에 해당된다.
창세기는, 그 이름이 암시하는 것처럼, 시작의 책이다. 그것의 문학적 구조를 볼 때, 그러한 이름은 참으로 타당하다. 그것의 전체적인 내용은 세 가지 시작으로 초점이 모아지기 때문이다.
첫째로, 아담에서 인류의 시작이 있다. 둘째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서 홍수 이후의 새로운 시작이 있다. 그리고 셋째로, 아브라함 안에서 선택된 나라의 시작이 있다. 이와 같이 창세기에는 세 개의 큰 '시작' 이 있다. 삼위의 하나님을 생각해 보라. 💕
그와 같이 우리는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여기의 창세기에 신성(神聖)의 친필(親筆)이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마치 오늘날 진화론자들과 고등비평가들에 의해 행해지고 있는 창세기에 대한 공격을 예상하면서 그것을 책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창세기의 세 개의 주된 두 단락은 대략 2,000년 정도를 망라함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할당된 분량은 총 열한 장(1장부터 11장까지)에 불과하다. 반면 세 번째 단락은 겨우 400년 정도를 망라함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할당된 분량은 총 서른 아홉 장(12장부터 50장까지)에 이른다.♡
창세기의 4분의 3 이상이 아브라함과 그의 세 자손(이삭, 야곱, 요셉)의 생애를 다루기 위해 할당된다.
창세기의 처음 열한 장으로 구성된 처음 두 단락은 문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후의 서른아홉 장뿐만 아니라, 구약 전체의, 더 나아가 성경 전체의 서론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러한 "서론"은 이후에 따르는 모든 것을 설명하기 위해 주어진다.
창세기의 처음 열 한장은 실제로 구약의 나머지 모든 것들이 세워지는 기초이다. 그것은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계보를 간략하게 개괄한다. 성경 전체가 하나의 나무라면, 그것의 뿌리는 창세기이다. 마찬가지로 창세기가 하나의 나무라면, 그것의 뿌리는 1-11장이다.
창세기의 주된 목적들 가운데 하나는 이스라엘 나라의 기원과 시작을 계시하는 것이다. 창세기의 처음 열한 장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된 나라가 되는 다양한 단계들이 어렴풋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한다.
창세기 10장과 11장은 인류 전체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12장부터 모든 관심은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과 그의 자손들에게로 초점이 모아진다. 창세기 12장은 우리 앞에 "모든 신자들의 조상" 아브람을 제시한다. 그의 이름은 나중에 아브라함으로 바뀌는데, 그는 고대 역사(歷史)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아브라함! 그는 유대인과 기독교인과 이슬람교도 모두로부터 공경을 받는다. 아브라함! 그는 이스라엘의 조상이다. 아브라함!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고 일컬어진다. 아브라함! 그로부터 육체를 따라 우리 주님이 오셨다. 그러므로 마땅히 우리는 이 사람의 생애를 집중적으로 조명해야 하며, 그럴 때 우리는 풍성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몇 장(章)에 걸쳐 아브라함의 역사(歷史)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오늘의 이야기는 이어지는 장들의 서론 격이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had said)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여기의 시제(즉 "had said"로서 표현된 대과거 時制)는 사도행전 7:2-3에서 스데반에 의해 언급된 사건을 되돌아본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여기에서 사용된 신적 호칭. 둘째로 하나님의 "나타나심"의 사실. 셋째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내용.
여기에서 사용된 신적 호칭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 오직 한 번 발견될 뿐이다. 그것은 천년왕국의 시(詩) 시편 29편이다.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3절). 이것이 천년왕국 시인 것은 10절로부터 분명하게 나타난다.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이러한 신적 호칭과 밀접하게 연결된 것을 우리는 또 다른 천년왕국의 시 시편 24편에서 발견한다.
거기에서 우리 주 예수는 "영광의 왕"으로 일컬어진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기시리로다"(7절). 이와 같이 이러한 호칭은 특별히 나라(kingdom)와 관련된 호칭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나라의 조상에게 나타났을 때, 그는 "영광의 하나님" 이라는 호칭으로 나타나셨다.
이러한 호칭의 타당성은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와 그의 조상들의 종교적 상태로부터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때 그와 그들은 우상 숭배의 상태 가운데 있었다. "영광의 하나님"은 여호수아 24:2에 언급된 "다른 신들"과 완전하게 대조된다.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행 7:2, 한글개역개정판에는 "그에게 보여" 라고 되어 있음).
이것은 우리의 첫 조상들이 에덴 조상으로부터 추방된 이후 하나님이 "나타나심"과 관련한 첫 번째 언급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벨이나 혹은 노아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씀을 듣지 못한다. 그렇게 볼 때 나중에 "하나님의 벗"으로 일컬어지는 이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은 정말로 크고 위대한 것이었다.♡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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