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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43] 홍수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43] 홍수

En Hakkore 2024. 3. 15. 10:18

뿐만 아니라 그에 더하여 그들은 신적 계시의 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적 계시의 빛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었는지 생각해 보도록 하자.

첫째로, 사람들은 구속자의 약속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첫 조상들이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겨나기 전에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선언하셨으며, 신자들은 그의 나타남을 대망(待望)하며 기다렸다(창 49:18을 보라).

둘째로, 여호와께 나아가는 유일한 수단으로서 속죄의 희생제사가 있었다. 하나님은 이것을 가죽옷을 통해 아담과 하와에게 알려 주셨다. 그것은 그들의 벌거벗은 것을 가리기 위해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이었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처럼, 그러한 희생제사를 드려야 할 필요성과 그것의 의미가 그들을 통해 그들의 자녀들에게 전달되었다. 그러한 지식이 부모로부터 자녀들에게로 이러진 사실은 또한 노아가 방주에서 나오자마다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린" 사실 가운데 나타난다(창 8:20).

셋째로, 하나님이 가인에게 주신 "표"가 있었다(창 4:15). 그것은 그가 하나님에 의해 거절되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였으며, 그의 죄를 나타내는 두드러진 기념비였으며, 그의 뒤를 따르는 자들에게 던지는 엄중한 경고였다.

넷째로, 창세기 4장을 공부할 때 이야기한 것처럼, 그때 이미 안식일 제도가 세워져 있었다. 가인과 아벨에게 있어 이미 예배를 위해 정해진 때가 있었던 사실에서,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창 4:3 관외).

다섯째로, 우리는 족장들이 오래 산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아담은 930년을 살았고, 므두셀라는 969년을 살았다. 두 사람이 산 연수(年數)를 합하면 인간 역사(歷史)의 초창기로부터 홍수 때까지의 기간을 거의 망라한다.  

아담은 930년을 살면서 자손들에게 자신이 창조된 경위에 대해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 행한 불순종에 대해,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결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러한 지식이 세대를 거쳐 전달되었음을 보여 주는 한 가지 두드러진 실례(實例)를 우리는 라멕의 말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홍수가 임하기 불과 수년 전까지 살았던 사람인데, 그는 노아를 낳으면서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라고 말했다(창 5:20).

여섯째로,  에녹의 예언이 있었다. 하나님은 에녹을 통해 세상에 임할 심판에 대해 경고하셨다(유 14, 15)

일곱째로, 에녹의 신비하며 초자연적인 옮겨짐이 있었다. 그것은 틀림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여덟째로, 노아의 무언(無言)의 설교가 있었다. 그는 방주를 만듦으로써 "세상을 정죄" 했다(히 11:7).

아홉째로, 성령의 역사(役事)가 있었다(창 6:3, 벧전 3:19).

이 모든 사실에서 홍수 이전의 사람들이 신적 계시에 대해 무지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고의로 배척한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고의적으로 죄와 악으로 얼룩진 삶에 착념했다.

이제 홍수의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자.

한 마디로 그것은 사람들의 철저한 부패와 패역함의 결과였다.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 6:12, 13).

하나님의 성도들은 세상의 소금이다(마 5:43). 세상은 거의 인식하지 못하지만 죄가 아구까지 차는 것을 막음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인류를 보존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 남아 있는 이유이다. 소돔에 열 명의 의인이 있었다면, 그 도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 오직 한 명만이 있었을 뿐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소금인 것은 성령께서 그들 안에 거하시고 그들을 통해 역사(役事)하는 사실에 기인한다. 사람들이 그의 은혜로운 나타나심을 대적하며 경멸한다면, 그의 나타나심은 거두어질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의 죄의 분량은 급속도로 채워질 것이다.

이러한 보존과 억제의 두 가지 기능이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 나타난다. 우리 주님이 성도들과 함께 세상에 강림하시기 전에,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 이라고 일컬어지는 자가 올 것이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살후 2:3).

이 사람은 범사에 하나님을 대적할 것이며, 하나님과 관련된 모든 것 위에 스스로를 높일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스스로를 하나님으로 내세우면서 사람들에게 신적 경배를 요구할 것이다(4절).

그는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나타날 것이다(9절). 이러한 "불법의 비밀"이 심지어 사도 시대에조차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충분하게 역사(役事)하는 것을 막는 것이 두 가지 있었다.

불법의 사람이 "그의 때"가 올 때까지 나타날 수 없는 것은 그것을 "막는 것"과 "막는 자"가 있기 때문이다.(6, 7절). 의심의 여지없이 여기의 비인칭대명사(막는 것)는 하나님의 교회와 관련되며, 인칭대명사(막는 자)는 성령 자신과 관련된다. 세상에 하나님의 교회와 성령이 있는 동안, 사탄의 활동은 억제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와 성령을 제거해 보라. 소금을 제거해 보라. 그러면 즉시로 그것의 짠 맛과 보존하는 능력은 사라질 것이며, 사탄이 활동하는 것을 막는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어렵지 않게 홍수의 직접적인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은 신적 계시를 경멸하며 배척했다. 사람들은 반복적인 경고를 조롱했다. 사람들은 대속의 희생제물에 의한 속죄를 발로 차버렸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했다. 하나님의 성도들의 숫자는 계속해서 감소하였으며, 마침내 한 가족만 남았다.

시체를 썩는 것으로부터 보존하기 위한 "소금"은 이제 거의 남지 않았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이 영원히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는데, 이제 그의 오래 참으심은 끝났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은 거두어졌으며, 이제 심판이 임하는 것을 막는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폭풍이 죄로 가득한 세상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