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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312] 감사의 노래 6(사무엘하 22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312] 감사의 노래 6(사무엘하 22장)

En Hakkore 2024. 3. 8. 10:28

이방인들의 굴복

"나를 보전하사 모든 민족의 으뜸으로 삼으셨으니 내가 알지 못하는 백성이 나를 섬기리이다."

하나님이 다윗을 그토록 보호하셨던 것은 그가 어떤 중요하고도 인상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을 암시해 주었다. 즉 그것은 베냐민 지파가 그에게 가했던 모든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들을 다스리는 것이었으며, 또한 이방 나라들보다 높아지는 것이었다.

아말렉과 블레셋 사람들의 결정적인 패배는 보다 뛰어난 승리에 대한 보증으로 간주되었다. 여기에서 반복되는 실제적 교훈은 아주 중요하다. 하나님의 변함없는 신실하심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과거에 그분에게서 받은 모든 복들을 미래에 있을 보다 큰 은혜에 대한 징표로 여기게 만든다.

정신이 혼미해진 형제들이여, 하나님이 지금까지 당신을 보호해 오신 것은 당신이 몸부림치다가 결국에는 넘어지게 하시기 위함이 아니다. 여섯 가지 환난에서 당신을 지켜 주신 분은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욥 5:19)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과 더불어 다음과 같이 말하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고후 1:10).🫰

"이방인들이 내게 굴복함이여 그들이 내 소문을 귀로 듣고 곧 내게 순복하리로다"(삼하 22:45).

우리의 번역자들이 앞 절 후반부에서처럼 이 구절에서도 시제를 현재에서 미래로 바꾼 것에 주목하라. 이 노래의 마지막 부분이 어디에서 시작되느냐 하는 문제와 관련해 참으로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

그 마지막 부분에서 과거의 성공은 미래에 있을 보다 큰 승리에 대한 보증으로 간주된다. 하나님은 다윗의 "방패"(31절)이셨고, 그의 "견고한 요새"(33절)이셨다.

그분의 온유함은 그를 크게 하셨다(36절). 그분은 그에게 "적들의 목"(41절, thenecks of his enemies,KJV-역주)을 주셨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해 그는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더 큰 복을 예비해 두고 계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살피는 구절을 통해 다윗이 예언의 영에 의해 신약 성서의 시대로 이월되었음을 확신할 수 있다. 지금 그는 그 자신의 왕국을 그의 후손이자 주님이신 분의 영적 통치에 대한 상징과 전조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불확실한 것은 이 노래의 어느 지점에서 역사적 이야기가 예언으로 병합되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히브리어 동사는 영어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토마스 스콧은 우리가 적어도 43절부터는 이런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여긴다. 알렉산더 맥라렌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여러 가지 옛 번역본들과 헙필드(Hupfield)의 가치 있는 설명을 따르는 것이 최상이다. 즉 우리는 우리의 번역본의 38절 이후 전체를 과거의 경험을 통한 믿음의 표현으로 여겨야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것은 너무 과하다고 여긴다.

오히려 나는 우리가 (아메리칸역 American Version)을 따라 44절을 기점으로 삼는 것이 보다 안전하다고 여긴다. 거기에서는 다윗이 자신의 왕국이 팔레스타인의 경계 너머로부터 확대될 것과 낯선 민족들이 자기에게 순복할 것을 확신하고 있음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윗이 경험했던 심각한 싸움과 그에게 주어졌던 현저한 승리들은 그리스도의 경험-그분의 고통과 승리 모두에서-에 대한 예시였다. 뿐만 아니라 다윗이 기대했던 영토의 확장과 이방인들에 대한 지배는 구속주의 고양(高揚)과 그분의 나라가 유대교의 경계선 밖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을 예시해 주었다.😊

첫째, 다윗의 대형이셨던 분은 그분의 백성들과의 싸움에서 건지심을 받았는데(44절), 그것은 그분이 죽음을 면하심으로써가 아니라 오히려 죽음을 이기며 그것을 통과하심으로써-그분은 모든 것에 대해 우월하시다-그렇게 되셨다.

둘째, 그분은 유대인들뿐 아니라 이방인으로도 이루어진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

셋째, 이스라엘에게 "이방인"(43절)이었던 자들이 복음을 통해 그분의 음성에 굴복했고 그분께 믿음으로 순복했다.

넷째, 이교(異敎)가 바울의 수고를 통해 치명상을 입었다. 그것의 오만함은 먼지처럼 낮아졌다. 나는 이것이 46절에 실려 있는 예언적 암시의 내용이라고 여긴다.

"이방인들이 내게 굴복함이여 그들이 내 소문을 귀로 듣고 곧 내게 순복하리로다"(삼하 22:45).

"많은 경우 복음은 그것에 대해 분명히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자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진다. 전에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는 자들이 그 첫 번째 메시지에 매료되어 그것에 굴복했다. 반면에 다른 이들은 복음의 즐거운 소리에 익숙함에도 그것의 가르침을 통해 부드러워지기는커녕 완고해진다.

때로 하나님의 은혜는 그루터기 사이를 달리는 불과도 같고, 한 나라가 하루만에 불타오르기도 한다. 예수님이 구애하실 때 '첫눈에 반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분은 특별한 자랑도 하지 않으면서 시저처럼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고 말씀하실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그분의 복음을 듣자마자 믿는다. 십자가의 가르침을 널리 전하는 것은 얼마나 도발적인 일인가!"(C. H. Spurgeon).

"이방인들이 쇠약하여 그들의 견고한 곳에서 떨며 나오리로다"(삼하 22:46).

"이방인들이 그들의 산채에서 두려워하며 기어 나와 이스라엘의 왕에게 충성을 바친다. 그리고 가련한 죄인들 역시 그들의 자기 확신이라는 요새와 인간적 안전이라는 동굴로부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머리를 숙이며 나아온다.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은 우리의 혈과 육에 숨어 있던 우리의 죄들이 성령의 성결케 하시는 힘에 의해 끌려나올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마음을 다해 주님을 섬기게 될 것이다"(C. H. Spurgeon).👏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3 p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