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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11] 그리스도, 영원한 말씀 본문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가' 즉 말씀이다. '태초에', 곧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이다. '하나님과 함께', 곧 '구별되는 인격성을 지니고' 이다. '계셨다', 곧 존재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셨다.
여기에서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반복한 것은, 그리스도는 단지 영원부터 하나님의 마음 안에 있었던 개념 내지 가공적인 관념이었다는 초기 영지주의 이단을 부인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무서운 이단은 오늘날에도 다시 울려 퍼지고 있다. 하나님 안에 계셨다고 말해지지 않았다. 그는 영원리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우리 앞에 제시된 사항을 실제적으로 적용해 보고 아울러서 앞 장 끝부분에서 제기하였던 일곱 문항 중 두 번째 질문에 대답하고자 한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에 대한 좀 더 나은, 좀 더 깊고 온전한 지식에 이를수 있는가? 자연을 연구함으로써인가? 기도에 의해서? 성경을 공부함으로써? 아니면 어떠한 다른 방법으로써인가? 이보다 더 중요한 물음은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묻건대, 당신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그의 인격과 성품에 대하여 어떠한 개념을 갖고 있는가?
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는 살아 계신 참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세상에 없었다. 하나님이 자연 안에 계시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참되다. 그렇지만 그것은 제한을 요하는 진술이다.
자연은 하나님이 존재하심을 계시한다. 그러나 그의 성품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는다. 자연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들, 곧 그의 능력, 지혜, 불변성 등을 나타내 준다.
그러나 그의 도덕적인 속성들, 다시 말해서 그의 공의, 거룩함, 은혜, 사랑에 대해서는 무엇을 말해 주고 있는가? 자연은 그 자체로서 아무런 자비도 알지 못하며, 아무런 사랑도 보여주지 않는다.
만일 눈먼 성도가 알지 못하면서 벼랑 끝을 걷고 있다면, 그는 마치 악한 살인자가 공격해 오는 것과 마찬가지의 운명에 처한 것이다. 만일 우리가 자연의 법칙을 파괴한다면, 이내 아무리 후회한다 해도 그 징벌을 피할 수가 없다.
자연은 하나님을 계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그를 숨기고 있다. 옛 사람들은 자기들 앞에 '자연'을 두었다. 그러니 그들이 하나님ㅇ 대해 무엇을 알았겠는가?
사도 바울이 고대의 학문과 문화의 중심 지역에서 보았던 저 제단이 답해 주는 바이다. 그는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쓰여진 제단을 보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온전히 알려지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뿐이다. 아멘아멘! 자연은 창조자의 손으로 지음받은 대로 남아 있지 않다. 그것은 재해 아래 놓여 있디. 그러니 불완전한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을 계시하는 완벽한 수단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는 거룩하신 분이시다. 그는 하나님이시며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나타나셨다. 그는 참으로 완벽하게 하나님을 계시하셨다. 그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 14:9)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에 우리의 대답이 있으며 실제적인 가치가 있다. 만일 믿는 자가 하나님에 대한 더 나은, 더 깊고 온전한 지식에 이르고자 한다면 그는 성경에 계시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해 기도하는 자세로 공부해야 한다. 아멘!📖
이 일을 우리의 중요한 업무, 커다란 기쁨으로 삼아야 한다. 성경의 장마다 나타나 있는 거룩한 구주의 탁월함에 대해 상세히 살펴보고 묵상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오직 그렇게 할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골 1:10) 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만 보여진다(고후 4:6).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1:3).
이 말씀은 또다시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신성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창조는 그에게서 기인한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창조하실 수 있다. 사람은 모든 자랑을 다하여도, 풀 한 포기 만들어 낼 수 없다.
이 구절에서 창조 전체가 말씀에서 기인되었다고 쓰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마일 그가 자기 자신을 창조하였다면 비록 그것이 가장 귀한 창조라 해도 이 말씀은 참되지 않다. 그러나 어떠한 것도 제외되지 않는다.
즉,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다." 그가 만일 이전에 계셨던 그대로 그는 영원하시다. 마찬가지로 그는 만물의 창조자이셨다. 그럼으로써 그는 전능하시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강해 p24
🍃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골 1:10).
❤️🩹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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