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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10] 그리스도, 영원한 말씀 본문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함께'라는 전치사는 두 가지 뜻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로, 말씀이 하나님의 면전에 계셨다는 것이다. "에녹이 하나님과[함께] 동행하더니",
즉 그가 하나님의 친구로서 살았다고 읽는 대로이다. 요한복음 1:1의 '함께'라는 의미에 조명을 던져 주며, 영원부터 말씀과 하나님 사이에 있는 복되신 관계에 대해 계시해 주는 아름다운 구절이 잠언 8장에 있다.
이 구절은 '지혜'가 인격화되고 있는 8:22부터 시작된다. 그 구절은 세상에 존재하기 전부터 말씀과 하나님 사이에 있는 복된 관계에 대해 말해 주고 있다. 8:30에서 이 같은 말씀을 읽을 수 있다.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이와 같은 뜻에 덧붙여 우리가 설명할 수 있거니와 여기에서 '함께'로 번역된 헬라어 전치사 '프로스'(pros)는 때때로 '향하여' 라는 의미로 쓰여졌으며, 대개의 경우에는 '~에게' 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었다.
말씀이 하나님께 가까이 향하여, 혹은 하나님께 있었다. 어떤 사함이 의미 있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함께' 라고 쓰여진 말은 다시 말해 분질적인 연합 안에서의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영적인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서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라고 한 것은 그의 독자적인 인격성을 말한 것이다. 즉 그는 하나님 '안에' 계셨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이 점에 있어 성경의 놀랄 만한 정확성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혹 그렇게 생각할 수 있거니와 "말씀이 아버지와 함꼐 계셨다"고 말해진 것이 아니라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 이라는 호칭은 삼위의 세 위격에 있어 공통적인 것이다.
반면에 '아버지'는 오직 첫 번째 위격에만 해당되는 특별한 칭호이다. 만일 "말씀이 아버지와 함께 계셨다"라고 하였으면 성령은 제외되는 것이디. 그러나 성ㅂ와 성령과 함께 영원한 교제 안에 거하고 있으므로 '하나님과 함께' 라고 쓰이게 되었다.
또한 이 구절이 "하나님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라고 표현되지 않았음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신격 안에 복수의 위격이 있게 되거니와,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라고 말한 것이 엄밀하게 정확하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혹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께서 곧 말씀이시니라" 이다. '말씀'이라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광에 대해 부정확한 개념을 갖게 되지 않도록 성령은 계속하여 말씀하고 계신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는 그의 독자적인 인격성을 나타내 주며, 신격에 대한 그의 본질적인 관계를 암시해 준다. 그리고 비록 충분히 강한 표현으로는 아니지만 성령께서는 분명하게 덧붙이고 계신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누가 하나님께서 곧 하나님 자신이신 그분을 구원하셨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말씀은 계시자이실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하셨던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신성에 대해 이보다 더 단호한 표현은 생각할 수 없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강해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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