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 John175 베데스다 못가의 그리스도 본문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5:20).
육체적인 마음을 가진 우리는 이 구절을 읽을 때 다시 한 번 혼란에 빠진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어째서 그는 '보여주심'을 받을 필요가 있단 말인가? 우리가 어린이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줄' 때 그것은 어린이가 무지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행자에게 바른 길을 '보여줄'때 그것은 여행자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는 이 구절이 그리스도의 중보자의 직무를 가리키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보는 것은 이 구절의 아름다움을 해치며 이 부분의 문맥의 통일성을 훼손시킨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지식에 있어서의 불완전성과 한계성을 가리키는 듯하나 바로 그 점이 그의 비길 데 없는 탁월성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이 구절 서두의 ' •••하사' 라는 말은 이 구절이 전체적인 문맥과 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바로 앞 구절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그가 '하나님과 동등' 하시다는 것을 계속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이 구절의 논지는 간략히 말해 이런 것이다. 즉 아버지는 아들에게 아무런 비밀이 없으시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아버지는 그를 사랑하신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똑같이 무한한 완전성을 공통으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크고, 그 사랑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모든 일을 보여주심으로써 명백하게 밝혀진다” 그들 사이에는 지극히 완전한 친밀성이 있다.
이 심오한 진리를 단순한 수준의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어떤 이방인이 당신의 집을 방문해 왔다면 당신이 그에게 '보여주지' 않을 것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가족사진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친한 친구나 사랑하는 친척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이 예증이 대단히 불충분한 것임을 안다. 그러나 아마도 이것은 필자가 제시하고자 하는 사상의 윤곽을 좀 더 잘 이해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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