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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247] 마하나임에 머뭄(사무엘하 17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247] 마하나임에 머뭄(사무엘하 17장)

En Hakkore 2024. 3. 4. 13:08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제안한 모략을 뒤엎기 위해 다윗의 친구 후새를 사용하셨던 것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것은 도망 중인 왕에게 약간의 쉴 틈을 제공해 주었다.

후새는 즉시 자기의 주인에게 자신의 계획이 성공했음을 알리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삼하 17:15-16). 전령 역할을 하던 두 명의 제사장은 바후림에 있는 어느 농부의 집에 숨어야 했고, 그 농부의 아내가 찧은 곡식으로 덮어 놓은 우물 안에 머물러야 했다.

하나님의 종들이 적들을 피해 숨기 위해 얼마나 이상하고 예상치 못한 장소에 머물러야 했는지는 심판의 날에나 완전히 알려질 것이다. 말이 난 김에 말인데, 우리는 이 사건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에 유념해야 한다. 즉 우리는 서둘거나 잘난 척하지 말고 늘 하나님이 은혜를 통해 제공하시는 적법한 수단들을 이용해야 한다.

참된 신앙은 결코 광신이나 운명론에 떨어지지 않고 우리로 하여금 신중하게 그리고 좋은 판단에 기초해 행동하도록 만든다.🫰

그 두 명의 전령이 그렇게 조심했던 것은 다행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이 숨어 있는 집까지 추적을 당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집 여주인이 발뺌을 하는 바람에 적들은 엉뚱한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들이 간 후에 두 사람이 우물에서 올라와서 다윗 왕에게 가서 다윗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일어나 빨리 물을 건너가소서 아히도벨이 당신들을 해하려고 이러이러하게 계략을 세웠나이다 다윗이 일어나 모든 백성과 함께 요단을 건널새 새벽까지 한 사람도 요단을 건너지 못한 자가 없었더라"(삼하 17:21-22).

"이것은 자신의 종과 그 종의 친구들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적 돌보심을 보여 주는 한 예다. 그로 인해 그들 중 하나도 무리 전체와 분리되어 죽거나 버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이 점에서 그리스도의 예표다. 그분은 자기의 참된 추종자들 중 아무도 잃어버리지 않으신다"(Thomas Scott).😊

이에 대한 대형(Antype)을 살피려면 요한복음 18장 8-9절을 보라.

성막을 향한 갈망

다윗이 시편 42편과 43편을 쓴 것은 거의 틀림없이 이때였을 것이다. 그 시편들은 그가 공적인 은혜의 수단(성막-역주)이 제공하는 유익과 축복을 빼앗긴 때 쓰였다. 그는 그 수단을 잃어버린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시 42:4).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분에게 간절히 탄원하면서 자기가 언젠가 다시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하나님이 거룩한 전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게 되기를 기대했다(43:3, 4).👍

이 시편들은 우리에게 다윗이 이 무렵에 어떤 내면의 고통을 겪었는지 그리고 그가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기 위해 얼마나 끈질기게 노력했는지를 가장 복된 방식으로 보여 준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다윗이, 비록 극심한 시련 때문에 인내의 한계를 넘어설만큼 압박을 받고 있는 도망자 신세였음에도, 여호와와의 교제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또한 그것들은 신자가 모든 곤경의 순간에 얼마나 큰 것을 의지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가련한 세상 사람들은 그런 사실에 대해 완전히 낯설어 한다. 그것은 부드러운 자비와 큰 연민을 갖고 계신 분, 그리고 우리가 그분께 우리의 짐을 맡길 때 우리를 붙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시 55:22)께 우리의 마음을 털어놓는 특권이다.🧡

시편 42편의 처음 두 구절은 예배의 장소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에 대한 간절한 영적 갈망을 표현한다. 우리는 우리가 그런 특권을 빼앗길 때만 그것을 우리에게 마땅한 방식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목이 타는 자만이 물 한 잔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3절에서 그는 여호와께 자신이 불경한 적들의 조롱을 얼마나 뼈아프게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 말씀드린다.

이어서 그는 현재의 상태와 생생하게 대조되는 이전의 경험, 즉 자신이 왕이었음에도 여러 사람들과 더불어 성막을 향해 나아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동참했던 일을 회상한다. 그는 자신의 낙담한 마음에 도전하면서 자기의 영혼을 추스르려 한다.

그러나 그는 곧 다시 낙심하며 다음과 같이 외친다.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6절). 이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그렇다. 그는 공적 은혜의 수단과 단절되어 극심한 시련으로 인해 괴로워하면서도 그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시는 분을 잊지 않았다. 나머지 구절들에서 우리는 그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자신의 짐을 완전히 내려놓는 것을 발견한다.🫰

스펄젼(Spurgeon)이 말했듯이, "여호와께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말씀드리는 것은 잘하는 일이다. 그런 고백은 분명하게 드릴수록 더 좋다. 다윗은 마치 아픈 아이가 자기 엄마에게 투정하듯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본받아야 한다."🧡

시편 43편은 42편과 너무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오래된 사본들 중에는 그것들을 하나로 엮어놓는 것들이 있을 정도다. 그 둘이 같은 시기에 쓰였다는 사실은 3절과 4절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시편 43편에서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께 자기를 위해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1절)라고 탄원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여기에서 "간사하고 불의한 자"한 아히도벨이나 압살롬 혹은 그 둘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자신의 낙심과 불신앙에 대해 괴로워하고(3절), 다시 자기에게 하나님의 임재와 신실하심을 보여 주시기를 기도하고(3절), 자기가 하나님의 집을 들아가는 구원을 얻게 해 주시기를 간구하고(4절), 결국 모든 것이 잘 되리라는 확신을 표명하며 그를 맺는다(5절).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3 p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