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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223] 기드론 시내를 건너감(사무엘하 15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223] 기드론 시내를 건너감(사무엘하 15장)

En Hakkore 2024. 3. 2. 12:30

사무엘하 15장 후반부에는 빛과 그림자가 놀랍게 뒤섞여 있다. 다윗은 그가 처했던 가장 어두운 시간 동안에 그의 가장 사랑스러운 덕성들 중 몇 가지를 보여 준다. 또한 그의 친구와 추종자들 역시 그들의 가장 훌륭한 모습을 보여 준다.

우리의 불행에 따르는 극심한 고통을 그 고통에 따르는 위로와 뒤섞어 완화시켜 주시는 것이야말로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방식이다. 다윗이 사랑하던 아들과 그의 중요한 책사가 그와 맞서 반역을 일으켰으나, 그의 군사들 중 일부의 변함없는 충성과 레위인들의 신실함 그리고 그의 고통을 목도한 백성들이 보여 준 연민은 그의 부서진 마음에 얼마간 실제적인 위로를 제공했다.

깊은 고통과 낙담의 시기에 처할 때 우리는 우리의 적들을 실제 이상으로 많게, 그리고 우리의 친구들을 실제 이하로 적게 여기기 쉽다. 그러나 이제 다윗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의 곁에 남을 각오가 된 자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발견할 참이다.

우리는 본문을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 비록 거기에도 소중한 것이 많이 있지만 - 영적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 시기의 그를 "회개하는 영혼"(the penitent soul)으로, 즉 지금 자신이 공의롭게 심판 당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자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이 지은 죄의 결과가 자신에게 임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런 징계를 받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경건한 슬픔으로 가득 찼고 자기 때문에 이름이 더럽혀 지신 분 앞에서 탄식했다. 그는 하나님의 회초리 앞에서 겸손하게 머리를 조아렸고 순종하는 자세로 그 회초리를 맞았다.

그런 마음 때문에 그는 모든 고통을 자기 혼자 감당하려고 했다. 왜냐하면 그는 여호와께 죄를 짓고 그분의 진노를 돋운 자는 다른 누구도 아니고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가 가드 사람 잇대에게 자기를 떠나라고 말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처절한 마음으로 그는 언약궤-여호와의 명백한 임재에 대한 상징-를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냈다. 언약궤는 그에게 큰 기쁨이었으나, 이제 그는 자기가 그런 기쁨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느꼈던 것이다.

잇대의 충성

나는 여기에서 본문의 내용을 더 개괄하기보다는 본문의 세부적인 내용들을 살피려 한다.

"그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 어찌 너를 우리와 함께 떠돌아다니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라"(삼하 15:19-20).

여기서 다윗이 보여 주는 정신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그 자신이 깊은 곤경 가운데 빠졌음에도 그의 생각과 관심은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향했다. 그는 그들이 자기가 겪게 될 역경과 위험을 피하기를 바랐다. 이것은 이 이기적인 시대에 우리가 유념해야 할 얼마나 은혜로운 모범인가!

우리는 가장 극심한 시험에 처했을 때라도 우리의 문제를 우리와 가까운 이들의 어깨 위에 얹으려 해서는 안 된다.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갈 6:5).

잇대는 다윗을 따라나섰던 "가드 사람 육백 명"(삼하 15:18)의 지도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다윗이 블레셋의 가드에서 살 동안 다윗과 운명을 함께하기로 작정하고 그를 따라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아마도 그들은 블레셋의 운명이 다했다고 믿었거나 혹은 (아마도 그것이 더 타당할 수 있는데) 다윗에게 매료되었기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다윗이 왕도에서 도망치는 상황에서 그를 따라나선 그의 가장 충실한 추종자들 중에 들어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이 시기에 다윗에게 가장 유용한 경호원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귀한 관대함과 부드러운 연민을 지녔던 다윗은 이제부터 자기가 감당해야 할 불편함과 위험에서 그들을 면제시켜 주고자 했다.

이것은 우리에게 다윗의 후손이자 주님이셨던 분이 (아마도 동일한 장소에서) 자신을 잡으러 온 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떠올리게 만든다.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을 용납하라"(요 18:8). 구약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늘 그것의 대형(Antitype)을 유념해야 한다.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곳에 있겠나이다 하니"(삼하 15:21).😊

다윗은 그들을 돌려보내고 싶어 했다. 그러나 다윗과 그의 대의(大義)에 대한 그들의 애정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강했다. 이것은 아주 복되고 놀랍다. 왜냐하면 지금 다윗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자기 백성들에게 거부되어 고통당하고 있는 자신과의 교제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윗을 수종하는 일을 아주 소중히 여겼기에 그 쓸모없어진 지도자의 곁을 떠나는 것을 거부했다. 영적으로 말한다면, 그리스도의 성령의 열매인 형제에는, 그것이 건강하고 기운찰 경우, 역경과 위험의 고통 속에서도 주저함 없이 그 사랑의 대상 곁에 남아 도움을 제공한다.

이 구절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큰 뜻이 아무리 업신여김을 당할지라도 충성스럽게 그분께 매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윗이 잇대에게 이르되 앞서 건너가라 하매 가드 사람 잇대와 그의 수행자들과 그와 함께 한 아이들이 다 건너가고"(삼하 15:22).

이 충성스러운 추종자들이 보여 준 헌신은 다윗의 마음을 감동시켰을 것이 틀림없다. 그것이 이방인들에게서 나온 것이었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21절)라는 잇대의 말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은 다윗의 인품뿐 아니라 그의 믿음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만약 그들이 그들의 모든 우상들을 분명하게 포기하지 않았다면, 다윗은 그들을 자기 곁에 두거나 그들에게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20절)라고 말하는 것은 얼핏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의구심은 다음 구절에서 해소된다.

그들이 건넌 것은 "기드론 시내"(23절)였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다윗의 무리를 앞서서 이끄는 명예로운 자리를 얻게 되었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2 p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