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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222] 도망(사무엘하 15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222] 도망(사무엘하 15장)

En Hakkore 2024. 3. 2. 12:29

충성하는 신하들

"왕의 신하들이 왕께 이르되 우리 주 왕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하리이다 보소서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하더라"(삼하 15:15).

내가 방금 말한 것은 이 구절에도 들어맞는다. 다윗이 직면하고 있던 그 안타까운 상황은 그의 측근들의 마음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압살롬이 반역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훔쳤던 상황은 다윗의 신하들에게 그들이 자기들의 주인에 대해 품고 있는 흔들림 없는 충성과 깊은 헌신을 보일 기회를 제공했다.

본문 6절에 기록된 상황의 속편에 해당하는 이 구절은 참으로 복되다. 6절에서 우리는 압살롬이 잘 꾸며진 말로 군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다윗과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한 가지 중요한 원리를 보여 준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그분은 다윗의 대형(Antitype)이시다)와 교제할 때는 사탄의 미끼가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우리는 우리와 친밀하게 지내는 자들의 진심을 알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상황이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압살롬의 반역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다윗의 순종을 보여 줄 기회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또한 누가 진정으로 그를 위하고 누가 그에게 대적하고 있는지를 아주 분명하게 보여 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흔히 번영은 이것저것이 혼합된 축복이다. 그리고 역경이 안전한 재앙일 경우는 거의 없다. 어떤 이에게 하나님의 섭리의 미소라는 햇살이 비출 때, 그는 즉시 그에게 애정을 고백하는 자들에게 둘러싸인다. 그러나 그의 삶의 지평선 위로 하나님의 섭리의 어두운 그림자가 몰려오면, 그렇게 알랑거리며 아첨하던 자들 대부분이 아주 신속히 그의 곁을 떠난다.

아, 사랑하는이여, 누가 참으로 우리의 친구인지 아는 것은 아주 가치 있는 일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 우리의 중지가 흔들리고 우리의 평안이 깨지는 고통을 겪어야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에 대해 불평해서는 안 된다.🥹

어떤 역경이 우리에게 아히도벨 같은 사람의 위선이 드러내 준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유익한 일이다. 또 만약 그것이 폭풍 가운데서도 우리 곁에 서 있는 소수의 사람들의 충성과 사랑을 보여 준다면, 그것은 더욱 유익한 일이다.

왕궁에 남겨진 여인들

"왕이 나갈 때에 그의 가족을 다 따르게 하고 후궁 열 명을 왕이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하니라"(삼하 15:16).

나는 이 구절의 하반절을 읽을 때마다 두려움을 느낀다. 이 구절은 단조로운 진술에 불과하지만, 그 어떤 이도 헤아리기 어려운 깊이를 지니고 있다.

분명히 다윗은 그 단순한 집안일을 처리하면서 별 생각 없이 그렇게 결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는 달리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 그는 틀림이 없고 아무도 이길 수 없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 그분 자신의  계획의 완성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열 명의 후궁을 왕궁에 남겨 둔 것은 집을 "돌보게"(take care of,  NIV, 한글 성경에는 "지키게"로 번역되어 있다-역주) 하기 위함이었다. 즉 왕궁의 살림들을 정리정돈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 자신의 말씀을 이행하시는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다윗의 악행 때문에 그에게 임하게 하실 징벌들 중 하나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내가 네 눈 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삼하 12:11-12).

성경은 그 위협의 실행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옥상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아버지의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니라"(삼하 16:22).

그 두 구절 사이의 연결 고리가 우리의 본문에서 나타난다. "왕이 나갈 때에 그의 가족을 다 따르게 하고 후궁 열 명을  왕이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하니라."

다시 말하지만, 다윗이 그들을 왕궁에 남겨 둔 것은 그들로 하여금 집을 돌보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그들이 압살롬에 의해 공개적으로 모욕과 강간을 당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은 말할 수 없을 만큼 엄중하다.

하나님은 어떤 일들을 통제하셔서 결국 선한 것이 되게 하실 뿐 아니라, 또한 어떤 일들을 통제하셔서 결국 악한 것으로 끝나게도 하신다. 모든 사건뿐 아니라 모든 사람과 그들의 모든 행위가 전능하신 분의 직접적인 통제하에 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롬 11:36).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을 죄의 원인으로 만들지도 않고, 인간을 책임이 없는 피조물로 만들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그분의 모든 행사에서 거룩하시다.

그리고 인간은 그의 모든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가 그 두 가지 진리가 양립하는 것을 이해하든 하지 못하든, 우리는 그 각각의 기본적인 진리들을 굳게 붙잡아야 하고, 어느 하나를 주장하기 위해 다른 하나를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혹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할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행동을 미리 정하셨다면, 우리는 기계보다 나을 게 없다." 다른 이는 다음과 같이 주장할 것이다. "만약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라면, 그의 행동은 하나님에 의해 통제될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생각들이 모두 헛됨을 보여 준다.

다윗은 열 명의 후궁을 왕궁에 남기기로 결정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자유로운 행동이라고 여겼을 테지만, 사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목적의 수행을 위해 하나님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

다윗 곁을 지킨 자들

"왕이 나가매 모든 백성이 다 따라서 벧메르학에 이르러 멈추어서니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모든 가드 사람 육백 명이 왕 앞으로 행진하니라"(삼하 15:17-18).

이들은 좋을 때만이 친구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평온한 시기에 다윗과 함께 즐겼다. 그리고 어려운 시절에 그를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그와 함께 특권을 나눠가졌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이 도망자요 망명객이 된 지금도 그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압살롬이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훔쳤던 반면,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모든 가드 사람"이 다윗 곁에 굳건하게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놀랍다.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예시다.

왜냐하면 비록 유대인들은 그분을 조롱하고 거부했지만, 이방인들 중에서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은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2 p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