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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198] 용서(사무엘하 12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198] 용서(사무엘하 12장)

En Hakkore 2024. 2. 29. 11:54

용서를 구할 의무

다윗이 받은 은혜로운 응답에 대해 고찰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아마도 지금이 그런 질문에 대해 살펴볼 최적기일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 혹은 비평가들을 보다 잘 만족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죄에 대한 용서를 탄원할 권리가 있는가?"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는 오늘날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과 맺었던 것과는 다를 뿐 아니라 그것보다 훌륭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여러분 중에는 내가 이런 질문을 제기하는 것에 놀랄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또 어떤 이들은 그것은 너무나 분명하기에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런 기도는 성경적 근거를 갖고 있으며 엇나가는 신자들인 우리의 상황에 적합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여긴다.

그렇기에 그들은 우리는 마땅히 회개하는 탄원자의 자리에 앉아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그분의 용서의 은혜를 간구해야 하며, 거기에는 더 이상 다른 증명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아,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계에는 너무 큰 혼란과 너무 많은 오류들이 있기에 나는 그 문제에 대해 한두 마디 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얼마간 영향력을 갖고 있는 한 그룹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떤 그리스도인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골 2:13)라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값 주고 사신 것을 성령께서 그들의 양심의 법정에서 그들에게 적용하시는 것과 혼동하고 있다. 다음 사항을 분명히 하자.

즉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때, 그것은 마치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이 흘려진 적이 없는 것처럼 혹은 우리의 눈물과 기도가 하나님의 정의에 대해 그 어떤 보상이라도 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새로운 죄는 새로운 회개를 요구한다.🫰

그렇다, 우리에게 또 다른 구속주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의 새로운 행사(히 4:16)와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보혈의 새로운 적용은 늘 필요하다(요일 1:7, 9).

그 옛날의 성도들은 용서를 얻기 위해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크오니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하소서"(시 25:11). 주 예수님은 그분의 제자들에게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그 기도는 분명히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해당된다.

왜냐하면 그 기도는 "우리 아버지"(11절)께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은 그분께서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께 우리의 죄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시 143:2).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의 마음을 향해 그분의 자비를 보여 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시 51:8).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용서의 증거를 보여 주심으로써 우리가 "주의 구원의 즐거움"(시 51:12)을 얻게 해 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회복의 기쁨

시편 32편에서 우리는 "모든 은혜의 하나님"(벧전 5:10)께서 비록 엇나갔으나 회개하는 자녀에게 주시는 대답에 대해 배운다. 스펄젼(Spurgeon)은 이 시편에 대한 그의 서론적 진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큰 죄에 대해 깊이 회개한 후 아주 놀라운 복된 평안이 찾아 왔기에 자신의 마음을 이 탁월한 노래의 부드러운 음률에 실어 쏟아냈던 것 같다." 머리글에 들어 있는 "마스길"(Maschil)이라는 단어는 "교훈"을 의미한다.

"한 신자의 경험은 다른 신자들에게 풍성한 교훈을 제공한다. 그 경험은 양떼가 따라야 할 발걸음에 대해 알려 주고, 또한 약자들을 위로하고 인도한다." 시편 51편 말미에서 다윗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15절). 그리고 그 기도는 응답을 얻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32:1-2).

다윗은 앞의 시편(시편 51편-역주)을 자비를 얻기 위한 구슬픈 간구로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는 이 시편을 회개를 통해 용서를 얻은 자의 행복을 축하하는 찬양의 노래로 시작한다.

앞의 시편에서 우리는 후회와 낮아짐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의 흐느낌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복되게도 그런 고통이 사라진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앞의 시편에서 우리는 죄에 대한 그리고 죄인이 간구하는 용서에 대한 여러 가지 동의어들을 발견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이미 얻어진 용서의 여러 가지 복된 측면을 발견한다. 그것은 다양하지만 동일한 의미를 지닌 여러 구절들을 통해서 드러난다.

전자는 통곡의 시편이고, 후자는 - 그것 자체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 "구원의 노래"(7절)다.

다윗이 얻은 용서의 기쁨은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라는 첫 구절에서부터 터져 나온다. 또한 그 시편의 첫머리에서는 그의 영혼이 누리고 있는 풍성함이 "용서"라는 한 자기 주제의 변주곡에 실려 울려나온다. 그는 자신이 최근에 겪은 소중한 경험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묘사한다.

그는 그 경험을 "허물의 사함"(그의 마음에서 견딜 수 없는 점이 제거됨)으로 또한, "죄의 가려짐(그리스도의 보혈 때문에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눈으로부터 그것의 흉악한 모습이 숨겨짐)으로 또한 "정죄를 당하지 아니함"(빛을 면제받음)으로 묘사된다.

그가 얻은 용서가 다른 회개하는 영혼들에게 얼마나 복된 깨달음을 제공하는지 보라 "이로 말미암아 모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서 주께 기도할지라"(6절). 마지막으로, 자신의 회복을 깊이 확신하는 자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다음과 같은 탄성은 얼마나 귀한가!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두르시리이다"(7절).😊

바로 여기에 가장 큰 타락에 빠진 자를 위한 소망이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전제되어야 할 것은 그가 모든 은혜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죄의 용서는 죄에 대한 참된 슬픔 뒤에 나온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하나님으로부터 그토록 멀어졌던 자가 회복되어 그분과의 복된 교제를 다시 허락받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의심할 바 없이 그렇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속량이 있음이라'(시 130:7).

또한 그분은 겸손하게 회개하는 신자를, 그가 이전에 지은 죄가 무엇이든 간에, 결코 내치지 않으실 것이다. 또한 그분은 사탄이 자신의 손에서 자신의 양떼 중 어느 하나라도 훔쳐가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죄에 빠진 자는 지체 없이 여호와께 돌아가 구주의 보혈에 의지해 용서를 구해야 한다"(Thomas Scott).아멘!😊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2 p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