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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368] 각 지파들의 해산(수 22:1-34)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368] 각 지파들의 해산(수 22:1-34)

En Hakkore 2025. 1. 31. 20:49

이미 주지한 바와 같이 실로는 통치의 중심이었다. 이스라엘은 거기에서 엄숙한 전체 회합을 가졌다. 이는 군중심리에 의해서 생겨난 움직임이 아니었고, 폭도들의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성급한 행동도 아니었다. 배도(背道)에 대해 어떻게 벌할지에 대해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미 법령을 반포하신 바 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그 문제를 논의하고 조사하기 위해 공식적인 회합을 가진 것이다. 이처럼 지혜롭고도 견고한 행동은 사만 이천 명의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인 길르앗 사람들의 처신(삿 12장)과 생생한 대조를 보여 준다.

이 당시 에브라임 지파 사람들이 내뱉은 성급한 말들은 분명 분노를 촉발시키는 것이었으나, 그렇다고 입다와 그의 초종자들의 거칠고도 잔인한 처신이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성령은 의로운 분노와 잔인한 화와 악의를 서로 구별지으신다. 전자에 대해서는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하고 말씀하시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 고 말씀하신다(엡 4:26, 31).💚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아마도 산헤드린)이 그 문제를 철저하게 연구한 것은 정말 바람직한 일이었다. 그들은 특정한 사람들이 일어나 그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을 섬기도록 이끌려 할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지시하신 여호와의 지침대로 조사를 진행했다.

"너는 자세히 묻고 살펴 보아서 이런 가증한 일이 너희 가운데에 있다는 것이 확실히 사실로 드러나면... 너는 마땅히 그 성읍 주민을 칼날로 죽이고 그 성읍과 그 가운데에 거주하는 모든 것과 그 가축을 칼날로 진멸하고"(신 13:12-18).

그들이 따라야 했던 절차는 신중함과 인내를 요하는 것이었다. 우선 그들은 심문해야 했다. 즉, 해당 문제점에 대해 답을 구해야 했다. 그 다음에는 살펴보아야 했다. 즉, 좀 더 주어진 증거를 검토해야 했다. 그리고 부지런히 물어야 했다. 곧 직접적인 심문을 일컫는 것이다.

정의로운 결단에 이르기 위해서는 과정도 공정해야 했다. 영적인 분별과 사려 깊은 절차를 통해야만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게 될 것"(살전 5:21)이다.

에베소 교회는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계 2:2)으로 주님께 칭찬을 받았다. 고린도교회는 법적으로 신중을 기하지 못했고 특정한 오류들을 제대로 조사하지 못함으로써 극심한 책망을 자초했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내가 너희를 부드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고전 6:2-5).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이 조사는 해를 끼치는 풍문을 처리할 때에 준수해야 할 몇 가지 근본적인 원칙들을 보여 주는데, 조사, 진술, 선언, 권고가 그것이다. 이 원칙들을 철저히 준수하면, 무죄 선언이나 정죄로 귀결될 것이다. 엄숙한 회합에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형제들에게 다음과 같이 결정 사항을 공포했다.

"이스라엘 자손이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를 길르앗 땅으로 보내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를 보게 하되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한 지도자씩 열 지도자들을 그와 함께 하게 하니 그들은 각기 그들의 조상들의 가문과 수령으로서 이스라엘 중에서 천부장들이라"(수 22:13-14).

비느하스를 택한 데에서 상당한 지혜가 드러난다. 그는 안타까운 배도의 시기에 처음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여호와께서는 친히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바 있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내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민 25:11-25).

그들이 비느하스를 보내기로 결정한 것은 그가 배도를 강력히 저항함으로써 형제들의 뇌리에 깊은 신뢰를 준 결과였다. 비느하스라면 반드시 여호와의 이름의 존귀를 지키며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을 수호할 것임을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두 지파와 반 지파를 위해서도 비느하스보다 더 바람직한 인물은 없었다. 비느하스처럼 여호와를 위해 열정적인 인물에게서 무죄 판정을 받았다면 그들의 무고함이 완전히 입증될 것이요, 결국, 신뢰를 회복하고 이스라엘의 하나됨이 곧바로 이어질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러한 문제의 처리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세 차례나 반복되는 진리가 여실히 입증된다.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 (잠 11:14; 15:22; 24:6). 🕊️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7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