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John904》 본문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요 20:11-23)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20:15).
이는 살아나신 구세주의 최초의 말씀이다. 그리고 주님다우신 말씀이다! 그는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러 여기 오셨다(사 61:1). 그리고 마침내는 그의 모든 백성의 얼굴에서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다(사 25:8; 계 21:4)♡
그가 여기에서 이 말씀을 하신 의도는 명백하다. 그는 슬픔으로 망연자실해진 그녀를 일깨우고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의 첫 질문은 부드러운 책망이었다:
너는 불평하는 대신 기뻐해야 하지 않겠느냐?
두 번째 질문은 훨씬 더 엄중하다:
네가 죽은 자 가운데서 찾고 있는 그가 누구시냐? 너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 생명의 주이심을,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그리고 목숨을 다시 얻기 위해 목숨을 내버리신 이임을 잊었다는 말이냐?
그녀는 참으로 열렬하고 사랑이 깊었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자주 들어온 그의 말씀을 잊었던 것이다.
"너는 누구를 찾느냐?"
흘러넘치는 슬픔의 근원은 오직 그리스도를 진실로 발견할 때에야 비로소 진정될 수 있다.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20:15).
우선 마리아의 꾸밈없는 단순성에 주목하자. 그녀는 구체적인 이름을 밝힐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고 거듭하여 "그" 라고만 칭하고 있다.
그녀는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에 너무 골몰해 있는 나머지 자기가 찾고 있는 이를 어느 누구든지 다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술람미 여자가 파수꾼에게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너희가 보았느냐"(아 3:3)라고 외친 것과 같았다. 그녀는 "내가 [그를] 가져가리이다" 라고 한 말에 주목하라.
그리스도는 그녀의 것이었다. 이는 사랑의 심도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녀에게는 그를 그렇게 부를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열렬한 신자에게도 큰 무지가 있을 수 있음에 주목하라.
그녀는 그를 "동산지기"인 줄로 알았다! 그런데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경건한 마리아는 그리 큰 실수를 범한 것이 아니다. 에덴동산을 돌보는 것이 아담의 일이었듯이 교회라는 동산을 돌봄은 둘째 아담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합당한 고통을 도구로 하여 땅을 파신다. 그리고 거기에 은혜의 씨를 심으시고 그의 말씀으로 물을 주신다"(Bishop Hall).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20:16).
이는 살아나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영혼에게 하신 두 번째 말씀이다. 그리고 이 두 번째 말씀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름으로 그녀를 부르시기 전에 먼저 "여자여" 라고 부르셨다.
그가 "여자"라고 부르셨을 때에는 하나님으로서 그의 피조물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녀를 "마리아"라고 부르셨을 때에는 구세주로서 그가 구속하신 자 중 하나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전자는 그가 모든 인간적 관계를 초월하여 높이 들려지셨음을 알려 준 것이고, 후자는 자기 제자 중 하나에 대한 그의 사랑을 암시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출 33:12)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여기 성육신하신 여호와께서 이 여자를 이름으로 알고 계신다.
왜냐하면 그녀도 또한 그 앞에서 "은총을 입었기" 때문이이다. 그리스도께서 마리아를 이름으로 부르셨음은 요한복음 10:3에 아름답게 예증되었다.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내리라." 이는 구속됨의 표지이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