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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898》 본문

강해시리즈/요한복음 강해 (An Exposition of John)

《John898》

En Hakkore 2024. 8. 8. 15:03

부활하신 그리스도(요 20:1-10)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20:9).

이것은 매우 엄중하며 우리를 겸손하게 해주는 말씀이다. 이 두 사도는 삼 년 동안이나 주께서 부활에 관해 말씀하신 것을 들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의 원수들은 그가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였으나(마 27:63 참조) 그의 벗들은 잊어버린 것이다! "그가...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마 28:6) 한 천사의 이 말은 통렬한 책망이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하셨느니라"(눅 24:5-7).

이 말도 또한 책망이다. 부주의한 사도들은 어렸을 때부터 구약 성경을 벗하며 살아 왔다. 그러므로 시편 16:9-11과 같은 구절들을 읽었다면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고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 또한 어린 시절에 잘못 배훈 교훈과 잘못 받아들인 전통으로 인하여(요 12:34) 편견을 갖게 되며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알아듣게 된다. 요한은 이 말의 증인으로서의 그의 신뢰성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말은 그들이 남을 속이지 아니할 정직한 사람일 뿐 아니라 미혹되지 않을 만한 신중한 사람이기도 함을 나타내고 있다"(매튜 헨리).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성령께서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둔 믿음과 단순히 외적 증거만으로부터 얻는 지적 확신을 비교하시고 있다. 기독교의 변증가들은 "증거"를 중요시한다. 그러나 "증거"를 과대 평가해서는 안된다.

피조물은 곧 창조주를 입증해 주고 있다. 그러나 창조주의 손길에 대한 외적 증거들은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며 그와 교제하게 해주지도 못한다.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록된 말씀만이 그 일을 하신다!♡

"역사적 사실들은 대단히 흥미 있고 실제로 중요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역사적 사실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 택함받은 백성을 애굽에서 탈출시키고 광야를 건너 가나안에 이르게 하신 것 등을 믿음의 근거로서 제시할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그보다 더 심오하고 영속적인 사실들, 즉 하나님의 아들의 강생하심과 죽으심, 부활하심과 승천하심, 그리고 그 결과로 하늘로부터 성령이 내려오신 것들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도덕적인 가치가 있고 양심을 깨우치며 마음을 정결하게 해주는 믿음이란 역사적 사실들을 그 합리적 근거로써 온전하고 명백하게 받아들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증거를 마음으로 영접하는 데 있다.

이것이 바로 모든 것보다 뛰어난 영혼의 시금석이다. 이는 영적 지식이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하신 모든 것을 점점 더 깊이 이해하고 즐거워함으로써 그리스도를 향해 성장해 가는 데 있기 때문이며, 그 지식이 바로 성도로 하여금 자기 자신과 세상의 심판에 따르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고 믿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전혀 미치지 못한 상태이다. 오늘날의 기독교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믿음이나 증거가 곧 그 예이다. 그것은 인간적인 것이며 따라서 양심을 깨끗하게 하거나 마음의 교제를 이루어 주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나지 아니한 자 안에서 그런 믿음을 발견할 수 있으나(요 2:23-25) 이 구절에서와 같이 신자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성령께서 인치셔서 현세적인 것들로부터 구해낸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여기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신 바는 바로 이런 것인 듯하다. 즉 가치 있고 힘이 있는 믿음이란 시작이나 추론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를 둔 것이라는 점이다.♡

제자들이 주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후에야 비로소 그가 말씀하신 것을 기억했던 것처럼, 그들은 믿게 된 후에야 비로소 기록된 말씀의 힘과 그것이 적용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즉 믿은 후에야 비로소 그들은 위에서 오는 축복을 받게 되었고 그 축복을 더 크게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베드로가 그의 첫번째 서신에서 말한 것처럼(1:8), 그것은 그리스도를 보지 않고도 그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이다. 그것은  그리고 보지 않고도 믿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으로 충만하게 된다.

증거에 근거를 둔 믿음은 이신론이나 범신론, 또는 무신론에 부딪힐 때 깨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죄사함을 이루지 못하며,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도록 인도되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만족이시요 기쁨이신 자의 은혜와 영광으로 마음이 충만하게 되지 못한다"(The Bible Treasury).

Arthur W. Pink 요한복음 p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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