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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279] 본문
거짓 선지자들 5(마 7:15-20)
참된 선지자는 그리스에게 정당한 자리를 내어드린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하여 건전한 교리를 갖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천주교도들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하여는 대다수의 개신교인들보다 더 정통이다. 그러나 후자만큼이나 전자도 그리스도의 직분적 위치에 대하여는 지극히 이단적이다.
참된 선지자는 주 예수를 자기 백성의 언약의 머리, 즉 자기 백성을 대신하여 은혜의 언약의 모든 조건들을 충족시키고, 또 자기 백성을 위하여 그 언약의 모든 축복들을 확보하시기로 창세 전에 세움을 입으신 분이라고 선포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언약의 '보증'과 '중보'(히 7:22; 8:6)로, "내가...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이것은 자발적인 행위였으나 신성한 계약을 수행한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여기 이 지상에서 행하신 모든 일과 지금 하늘에서 행하고 계시는 일은 모두 영원한 계약을 이룬 것이었고, 또 이루어 가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구원에 관련된 모든 일은 영원한 삼위일체 사이의 언약의 조항에 의해 계획된 것이었다.♡
그 어느 것도 우연에 맡겨진 것이 없고, 그 어느 것도 불확실하지 않았으며, 그 어느 것도 피조물이 행한 어떤 일에 따라 변하도록 하지 않았었다. 이 영광스럽고 근본적인 진리에 대하여 거짓 선지자들은 완전히 침묵을 지킨다.
보증(Surety)이 성육하신 것은 곧 그가 하나님의 성약을 수행하기에 알맞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스도께서 율법 아래 있게 되고 그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며 자기의 언약의 백성을 대신하여 그 율법의 형벌을 견디도록 되신 것은 바로 율법의 저주에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그의 언약의 의무들을 충실하고 완전히 수행하였으므로 아버지께서는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사 53:11)고 엄숙하게 말씀하시며, 그리스도가 위하시는 모든 자들은 영원히 구원을 받을 것이고 그들 중의 하나도 멸망치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셨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언약을 맺으셨고,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는데 그것은 "만사에 구비하고 견고하게 된 영원한 언약"이다(삼하 23:5).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역을 모호하고 불분명하며 일반적이고 뒤죽박죽인 일로서,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서 거짓 설명을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베드로를 위해서와 같이 유다를 위해서도, 또 바울을 위해서와 같이 진실 되게 빌라도를 위해서도 그의 피를 흘리셨다고 믿는다. 그들은 불확실하고 불확정적인 구원을 전파하고, 그것이 마치 모두를 위한 것이거나 그 누구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즉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면 좋고 선한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리스도께서 실망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참된 선지자는 인간을 그의 적합한 자리에 둔다. 그는 인간이 타락하였고 파멸되었으며 잃어버린 바 된 피조물이며 죄와 허물 가운데에 죽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 있고, 그의 마음은 하나님께 적대하고 있으며, 하나님께 상습적으로 반역을 일으키는 자임을 지적한다.
그는 이것이 이교도 가운데에서 뿐만 아니라 기독교 세계에서 태어난 자들에게도 똑같이 사실임을 보여준다. 즉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롬 3:10, 11)고 말한다.
그는 인간이 완전히 파멸되어 있으며, 그의 존재 중 어느 부분도 그가 태초에 그의 창조주께 반항하였던 것의 두려운 결과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음을 말한다. 그의 이해는 어두워졌고, 감정도 부패되었으며, 그 의지도 노예가 되었고 마귀의 포로가 되었다.
인간은 참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대한 사랑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그 대신 그의 마음은 하나님께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을 바라고 그를 구하기는커녕 그는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자기의 생각 속에서 하나님을 추방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하나님의 탁월함에 대해서는 눈멀고, 그의 목소리에 대해 귀먹었으며, 그의 권위에 도전하고, 그의 영광에 조금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참된 선지자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다음을 설명한다. 그는 죄인의 실제 상태 그대로의 모습을 묘사할 뿐만 아니라, 인간은 자신을 조금도 변화시킬 수 없으며 그의 처지를 조금이라도 낫게 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에게는 '힘이 없음'을, 또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케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쁜 행동을 전혀 할 수 없음을(롬 8:7, 8) 엄숙하게 알린다.♡
그는 악을 행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 선한 일을 행할 수 있기보다는 차라리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들을 변화시키는 일을 더욱 쉽게 할 수 있을 것(렘 1:31, 23) 이라고 주장한다.
요컨대 주권적 하나님이 인간에게 은혜의 기적을 베풀어 주시지 않는다면 그는 어찌할 도리가 없으며 돌이킬 수 없이 잃어버린 바 되리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이와는 정반대로 말한다. 그들은 '부드러운 것들'을 말하고 청중들의 비위를 맞추며, 그들의 처지는 그 실제 상태대로 절망적인 것은 절대 아니라고 믿게 한다.
거짓 선지자들이 타락을 분명하게 거부하지 않지만, 혹은 그것을 (진화론자처럼) '진화' 라고 부르지 않지만, 그들은 그것을 크게 경시하여서 그 타락이 인간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회복될 수 있는 경미한 사건인 것처럼 보이게 하고, 인간은 그 타락에 의해서 전혀 영향을 받지 않으며, 인간은 여전히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타락에 대한 관념이나 전파 내용에 따라, 구속에 대한 필요와 그의 성격에 관한 인간의 개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인간의 타락의 정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파되는 복음의 내용이 달라진다.
ArthurW. Pink 산상수훈 p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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