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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253]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253]

En Hakkore 2024. 7. 30. 13:44

구원의 길 2(마 7:14, 15)

재물을 의지하는 것만이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구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경우에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 5:44)라고 말씀하셨다.

명예를 사랑하고 인간들의 인정을 구하는 것은 구원을 얻는데 있어서 또 하나의 방해물이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주의 깊게 읽어 본다면(복음은 그리스도인의 편에서 기술하고 있다. 1:16).

주 예수께서 천국에 이르는 일이 간단한 문제라고 가르치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5:29, 30에서 오른 눈이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고(음욕을 품으면), 오른 손이 실족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고(우상을 사랑하면)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을 '창수'와 '바람'에 부딪칠 때 견뎌내야 하는 '집'으로 비유하셨다 (마 7:25).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아야 한다고 선언하셨다(마 16:24).

주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이 세상에서의 순탄한 항해를 약속하신 대신에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마 10:25)고 말씀하셨으며,

단순한 믿음으로만 천국을 얻는 데 충분하다고 가르치시는 대신에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고 말씀하셨다.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을 갖도록 재촉하는 대신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라"(눅 14:28).

그 문은 좁다. 그 문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배반의 무기를 등에 진 자들에게 허락되어지지도 않으며, 또한 그들은 세상과 짝하여 살아가도 뚫고 나아갈 수 없다.

그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마음을 겸손하게 가져야 하며, 죄에 물든 쾌락을 버리고 세상의 친구들을 멀리 해야 하며, 자기의 모든 직무를 수행하시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이 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을 들어가도록 허락해 주는 입구라는 사실을 주목하라. 그리스도께서는 그 길을 "협착한 길" 이라고 묘사하셨는데 그것이 곧 문 자체보다 더 수월하지도 넓지도 유쾌하지도 않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그렇게 묘사하셨던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3:4에서 같은 말이 '받을 환난' 으로 번역되어 있다.

순례자가 아버지의 집으로 인도되는 것은 안락한 꽃 침대 위에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순례자는 살을 자르고 찢는 가시덤불을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 그 길은 구속자의 길일 뿐만 아니라 구속받은 자의 길이기도 하다(요 10:4).

주님의 길은 환난의 길이었으므로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범을 따르려면 우리 역시 환난의 길을 걸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늘에 계신 그분과 연합하지 못할 것이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그리스도의 거룩한 가르침을 마음에 성실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이 길로 들어갈 수 있듯이 마음과 생활을 끊임없이 통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그 길을 가르침에 의하여 건너갈 수 있다.♡

이 협착한 길을 걷는 자들은 불경건한 자의 권고를 듣지 아니하며(시 1:2),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않으며(잠 3:5), "열방의 규례"(렘 10:3)를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믿는 자의 생각은 성경에 의해 형성되며, 그의 행위는 성경의 법규에 의해 인도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믿는 자에게 실제로나 경험상으로 "그의 발에 등이 되고 그의 갈 길에 빛이" 되어 준다. 협착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명시되어 있으며, 그리스도인은 그 길을 따라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잠 4:27).

그가 원수를 만나게 될 때 그 원수를 굴복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그 원수에게 굴복하게 될 것이다. 그 길이 곧장 오르막길이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불요불급한 일이며 힘든 일이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그로 하여금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읽고, 깊이 교화를 받은 영혼이 순례의 행로를 순탄한 천국의 도시로 그리고 있는지 아닌지 보게 하라.

슬프게도 오늘날의 대부분의 설교는 그와 같이 신실하고 유익한 작품 속에 들어 있는 내용과 반대로 행해지고 있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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