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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224]

En Hakkore 2024. 7. 28. 16:36

은혜를 구하는 일 1(마 7:7, 8)

반율법주의의 가르침을 듣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자기의 우상을 저버리지 않아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전쟁의 무기를 내버리지 않아도, 회개 없이도 그들을 구원하신다고 믿는다.

그들은, 구원이 천국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허가증일 뿐아니라 대에 대한 사랑과 지배로부터의 최초의 구조라는 것을 모른다.

또한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은혜는 결국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을 사는 것"을 가르쳐 주는 거룩한 원리라는 것을 모른다(딛 2:11, 12).

이 미혹된 사람들은 참된 은혜의 본성을 분명히 이해했는가? 더구나 그들의 타고난 본성의 모순을 더 이상 감출 수 없다는 것을 이해했는가.

바리새인들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율법을 존중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의 형상을 지니고서 아버지의 율법을 존귀케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미워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그의 율법에 대하여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중생하지 않은 자는 아무도 본문의 약속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선언한다면, 이러한 가르침이 가련한 죄인들로부터 하나님께 기도할 마음과 그 밖의 다른 것들을 빼앗아 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한 질문은 대단한 무지나 그러한 사실에 대한 어떤 편견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죄인들이 자기의 본래의 상태대로 있는 한,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며, 이득을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되는 종교적인 의무를 제외하고서는 어떤 의무도 이행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피조물에게도 기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동기를 주어 보라(참기 어려운 육체의 고통이나 사랑하는 자의 고통이나 임종 시나 그가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기만 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주는 친구의 요청 등). 그러면 그는 오직 자신만을 받들 뿐이며, 하나님은 전혀 섬기지 않을 것이다.

불경건한 자들에게 마태복음 7:7,8과 같은 약속이 그들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그들의 곤경의 절망적인 상태를 감추려 하고, 그들이 정욕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혐오의 대상이 되며 그에게 접근할 수조차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그럴듯하게 얼버무리려 하는 그들의 분별하지 못하는 눈 속에 먼지를 뿌리는 것과 같다.

오늘날 영혼의 충실한 치료자를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겠는가?

오늘날의 강단을 차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창과 칼과 하나님의 율법을 사용하여 설교하는 대신 아첨으로 설교하며, 전혀 그렇지 않은데 "평안하다, 평안하다"라고 부르짖는다면 중생하지 않은 청중들은 시럽이나 마취제로 달래어 만족시키고 있다.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시는 성삼위 하나님께서 오직 자기만을 기쁘게 하면서 사는 자들에게 무슨 격려를 해주실 수 있는가? 그런 자들이 들을 수 있는 말은 오직 이것뿐이다.

즉,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행 8:22).

사람의 마음은 인간의 말로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사악하며, 만일 사람이 진심으로 그러한 상태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아무 희망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종들의 임무는 거짓 위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거짓 자만심을 타도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자들에게 그들이 스스로 기도함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지 않은 자들로 자기의 경우가 얼마나 비참한가를 알 수 있도록 신실하게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두 구절을 병행해서 설명하는 충분한 근거를 마태복음 7:6,7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구세주께서는, 그의 하나님으로서의 전지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귀중한 약속, 곧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라는 말씀이 잘못 사용될 것을 미리 아시고서, 이 구절의 바로 앞에서 분명히 다음과 같이 강조하여 경고하셨다.

즉,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이 복된 약속을 이유 없이 몹시 심하게 악용해 왔다.

오늘날 혼란에 빠진 처중들에게 강조해야 할 내용은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듣는 '무리들'(5:1; 7:28)에게 말씀하신 바로 그것이다.

즉, 마태복음 5:17로부터 7:5에서 설명하신 바와 같이, 하나님의 율법의 영성과 그 율법의 요구의 엄중함과, 그 율법의 거룩한 요구의 넓이와 깊이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말씀을 듣는 자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에 의해 겸손하게 되어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요구 조건들을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하였음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그리고 그에게는 '변명할 것'도 '힘'도 없다는 것을 느끼고 나서야 비로소 본문의 위로를 완전히 받게 될 것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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