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산상수훈 185] 본문
염려하지 말라 5(마 6:32-34)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3절).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는 탐욕을 치료할 훌륭한 반대 동인을 알려 주신다. 앞 절들에서 죄가 시작되는 근거, 즉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인생의 것들에 대한 지나친 염려를 지적하였으므로 여기에서 주님은 그 특효적인 처방을 보여주고 계신다.
즉 하나님의 것을 우리의 영원한 관심사로 삼는 것이다.
"단지 사람들에게 공중의 새들이 그들에게 믿도록 가르치는 대로, 들의 꽃들이 걱정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깨우쳐 주는 대로 믿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소용없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불신은 이교도적인 것이라고 말하며 믿음을 갖도록 그들을 꾸짖고자 시도하는 일은 무익하다. 우리는 지고한 한 대상을 향한 궁극적이며 탁월한 갈망으로 마음을 채워야만 한다.
그렇게 할 때, 열등한 것에 대한 불안한 염려가 차지할 자리 내지 여유가 남지 않을 것이다. 땅의 것에 대해 지나치게 존중하는 이교도들과 반대로, 우리의 존재에 그리스도의 사람이 형성되게 하라"(알렉산더 맥클라렌)
토머스 찰머스(Thomas Chalmers)는 [새로운 감정의 충동적인 힘 The impulsive power of a new affection] 이라는 인상적인 표현의 저술로 유명하다.
하나님과 세상,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한 사람의 영혼을 갖이 소유할 수는 없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마음에 가득 퍼질 때, 세상에 대한 사랑은 내쫒겨지게 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사람은 동시에 다른 두 가지 내지 여러 대상들에 전념할 수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가 두 주인, 즉 하나님과 재물을 섬기는 것은 전연 불가능하다. 그는 자신의 애정을 위의 것에 두며, 땅의 것에서 분리시켜야 한다.
전자가 참되고 거룩한 것(신앙의 훈련에 의해)이 될수록, 관심을 끄는 것이 후자로 나타나는 경우는 더 적어지며, 그것들이 발붙일 데도 적어질 것이다.
어린 아이를 더럽고 위험스러운 대상에서 떼어 놓는 최상의 방법은 더 만족시키는 다른 것을 주는 일이다. 만일 말을 속보로 달리게 할 수 없다면 말 머리를 집으로 돌려보라. 그러면 곧 그 속되가 빨라질 것이다.
한 논증에 이어 또 다른 논증을 들어 제자들에게 불신적인 염려를 단념하게 하신 그리스도는 이제 그들에게 염려가 그들의 마음에 항상 가득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즉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에 대한 염려이다.
여기에서 세 가지 의문점이 즉시 우리에게 제시된다.
첫째로, 저 특별한 용어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둘째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우리가 '구한다' 는 것에 내포하고 포함된 뜻은 무엇인가?
셋째로, '먼저' 라는 단어가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 를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것에 대한 포괄적인 표현으로 간주한다. 매튜 헨리는 "그것은 우리의 전 의무의 총체이자 본질이다" 고 말한다.
토마스 스코트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메시야의 나라의 축복들, 그 의로써 그의 대상들은 의롭다 여김을 받으며, 그 은혜에 의해 정화되고, 그 선한 사역들 안에서 걸어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의들은 어떠한 분명한 개념을 전달하기에는 너무 간단하고 모호한 듯하다. 따라서 우리는 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아야 겠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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