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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173] 본문

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173]

En Hakkore 2024. 7. 24. 17:09

염려하지 말라 3(마 5:28, 29)

그러나 또 다른 측면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이 말씀에서 구주께서는 우리에게 들에 있는 비이성적인 피조물들이 사람들보다도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하나님께 더 순종하고 있음을, 우리는 그것들보다 더 거역하고 있음을 가르치신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늘과 땅에게 유대인들의 배은망덕에 대한 질책을 들어보도록 불렀었다(1:2).

또 다른 선지자는 우상 숭배에 대하여 여로보암 왕을 경책하면서, "단아 단아 여호와께서 말씀하시었다" 라고 외쳤다(왕상 13:2).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의 왕을 경책할 때에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어다" 라고 부르짖었다(22:29).

에스겔 선지자는 이스라엘 산들을 향해 예언하기를 명령받았다(6:3).

이 모든 예들은 만일 지각이 없는 피조물들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성을 부여받았더라면 사람들보다도 그들의 창조주의 뜻에 훨씬 순종하였을 것임을 보여준다.

또한 들풀을 생각하여 보도록 우리에게 명하심에 있어 우리의 선생되시는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암시하고자 하셨다.

즉 비록 우리가 그들 피조물들을 바라보고 사용하면서 매일 눈앞에 두고 있을지라도 얼마간은 우리의 무지함으로 인해, 또 얼마간은 무관심과 부주의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들에게서 취할 것을 분별하지 못하며, 그들이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가치 있는 교훈들을 배우지도 못함을 암시하신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이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의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19,20).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의 창조물들을 고찰해 보는 일에 있어서 우리의 둔감함과 무관심을 지적하셨던 것이다.♡

그러니 만일 우리가 자신의 일시적인 행복에 필요한 것들을 배우는 일에 있어 이처럼 둔하다면, 자신의 영원한 구원에 관한 일에 있어서는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우리는 저 백합화들에게서 과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그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하나님은 모든 사역들과 마찬가지로 이것 역시 놀랄 만큼 우리의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겨울철에 그것들은 비록 실제로는 죽지 않았을지라도 대지에 죽은 듯이 누워 있다. 그것들은 서리와 눈으로 덮여 있다. 그렇지만 봄이 되면 그들은 줄기와 잎들, 그리고 왕좌에 있는 솔로몬의 모든 영광을 능가할 만큼 아름답고 우아한 꽃들로 다시 살아난다.

그러면 이것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들 스스로, 혹은 사람의 힘으로 살아났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들' 의, 혹은 '야생'의 백합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디로부터 나왔는가? 하나님께서 그들 피조물들을 만드셨을 때 말씀하셨던 그 본래적인 창조 명령으로부터이다. 즉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를 내라"(창 1:11)는 말씀이다.

그것은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아름다운 백합화와 모든 다른 초목을 내는 힘과 덕을 가지도록 땅에 이르신 저 영원히 지속되는 말씀으로부터이다.♡

그리고 권능의 말씀에 의해 들에 백합화를 내도록 하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 만일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기만 한다면, 온당하게 적합한 수단을 사용하으로써 우리는 인생에 필요한 충분한 의복과 모든 다른 것들을 가지게 되리라는 섭리의 말씀도 주신 바 있다.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이 말씀에서 구주께서는 우리에게 백합화들이 염려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를 주목하게 하신다. 그것들은 우리가 해야만 하는, 옷을 입기 위한 어떠한 수고도 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위해 예비하시고 그들을 그토록 매혹적으로 꾸미고 계신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우리에게 마음 산란한 염려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섭리에 대해 들풀이 소유하고 있는 것에 비하여 뒤지지 않는 자격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의복을 위해 들풀에게는 없는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셨다.

비록 어떠한 사람도 필요한 것들을 획득하기 위한 합당한 수단을 무시하면서 하나님의 섭리에 의지한다는 구실로 빈둥거리며 살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본문 말씀에서 그를 신뢰하고 섬기는 모든 자들에게 혹 그들이 온갖 수단에서 실패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주시리라고 확신시키고 있다.

만일 질병이나 상처로, 혹은 노쇠하여 우리가 더 이상 수고도 길쌈도 할 수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충분한 의복을 얻지 못하는 것을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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