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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168] 죄와 패배와 심판(수 7:1-26) 본문
[Gleanings in Joshua 168] 죄와 패배와 심판(수 7:1-26)
En Hakkore 2024. 7. 18. 11:22이 절을 넘어가기 전에 또 다른 각도에서 그 중심인물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얼굴을 묻은 것이 신인이신 구주 예수님을 다시 한 번 모형으로 그려주지 않는가?
지금 여기서 여호수아가 슬피 울며 자복하고 있는 문제, 곧 아이성에서의 재난의 근본 원인이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탈취한 범죄였다는 점을 기억하면, 여호수아의 겸비함이 겟세마네에서의 구주 예수님의 고뇌를 엄숙하게 미리 모형으로 보여 준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지 않겠는가?
주님은 그분의 고난의 절정에 이르러 그 백성을 위한 보증물로서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위해 "저주가 되실 즈음"에,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해 준다(마 26:39). 그런데 여기서 여호수아가 바로 그 다음에 한 일이 기도였다(7절).
여호수아가 자기 자신의 안타까운 실패를 시인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반문을 제기한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은 그가 모형이었음을 더욱 예리하게 드러내 준다고 대답할 수 있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주님은 겟세마네에서 죄를 지시는 자이셨고, 그 백성의 허물들이 그에게 지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서 그는 높고 귀하셨다. 모형은 유사점으로는 물론 차이점으로도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만나를 먹었어도 그 뒤에 죽었으나, 생명의 떡을 먹는 자들은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요 6:49, 50).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수 7:7)
여기서 구약의 기도들 가운데 신약에 나타나는 기도들과 그 어조나 내용이 상당히 유사한 하나의 기도가 시작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기도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합당하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여러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 가지로 답변할 수 있다.🍒
첫째, 기도란 하나님과의 교류요 그분을 사모함이다. 기도란 그분께 찬송을 올려드리는 것이요, 그분의 모든 자비하심에 대해 감사드리는 것이다.🌱
둘째, 기도란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요, 그 필요의 공급을 그에게 구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죄들을 그분 앞에 내어 놓고 시인하며, 그분의 용서와 회복을 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셋째, 기도란 다른 이들의 짐을 우리가 지고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한다. 그러나 여기 여호수아 7장에서 우리는 기도의 이런 면들과는 사뭇 다른 무언가를 대하게 된다.
여기서 여호수아는 완전히 압도당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깊이 고뇌하고 있으며, 그는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그의 마음을 쏟아놓고 있다. 물론 그의 과오들은 피하려고 애써야 하겠으나, 우리 역시 비슷한 정황에서 그렇게 할 특권과 의무가 있다. 그렇게 하면 압도되고 짓눌린 안도감이 생길 것이다.
여호수아의 기도에는 미사여구도 없고, 하나님의 약속들에 호소하는 것도 없고, 간구의 내용을 정확히 표현하는 것도 없다. 그 대신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여호와 앞에 자기 자신의 모든 짐을 자의적으로 내려놓는 것을 보게 된다.
비판적이고 트집을 잡는 이들은 이 기도에서 흠을 찾아내고서 앞뒤가 다르고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 기도에는 무엇을 찾아내든지 간에 이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각자 다음과 같은 시편 102편의 제목에 비추어 여호수아 7:7-9을 잘 뜯어 살피는 것이 합당하다.
"고난당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그의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로하는 기도..." 이 말씀에 대해 하나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는 존귀한 종은 이렇게 쓰고 있다.
"여러분과 저도 갖가지 환난을 당할 수 있다. 우리도 때때로 동일한 괴로움에 압도되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가 여기 시편 기자가 행하는 것처럼 행한다면 좋을 것이다. 저는 평생토록 나의 환난을 혼자서 지고 가거나 그 누구에게 슬픔에 압도되어 감정을 토로해서 유익을 얻어본 일이 없다. 아니다.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아무리 높은 점수를 받은 성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내 아픔을 주 앞에 쏟아부을 때에는 언제나 응답을 얻는다. 그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370
● 시편 102장 1-7절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부르짖음을 주께 상달하게 하소서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날이 연기 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숯 같이 탔음이니이다 내가 음식 먹기도 잊었으므로 내 마음이 풀 같이 시들고 말라 버렸사오며 나의 탄식 소리로 말미암아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 나는 광야의 올빼미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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