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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102]

En Hakkore 2024. 7. 15. 15:06

구제에 대한 교훈(마 6:1-4)

의를 실행하는 데 있어서 구제를 필수적인 요소로 삼으심으로써 우리 주님께서는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이란 우리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선택하도록 우리에게 맡겨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으로 명령된 중요한 일이라고 가르치신다.♡

궁핍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절대로 우리의 임의에 맡겨진 일이 아니라면 그것은 드러나 있는 공의 중 하나이며, 그 공의를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법과 자연의 법을 둘 다 위반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은 의로운 행위일 뿐만 아니라 친절한 행동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구제(alms)라고 번역된 말의 헬라어 단어는 동정심을 품는 것, 혹은 자비롭다는 뜻의 어원으로부터 나왔다.

이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행위의 이면에서 그 행위를 하도록 자극한 정신을 살펴보게 한다. 왜냐하면 '구제'란 단순히 물품이나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주는 사람의 자비롭고 동정에 찬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방금 지적한 내용을 통하여 우리는 또한 누가 구제를 받을 자격을 갖춘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 마땅히 구제를 받아도 좋은 사람들인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맹목적인 구제를 행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우리의 동정심을 일으키는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이 바로 구제를 받아야 할 사람이다. 예를 들면 고아나 나이 많은 과부, 불구자, 병든 자, 그리고 소경과 같은 사람들은 구제를 받아야 한다.

이러한 원리에 충분히 입각한다면 게으름과 무절제를 조장하므로써 이로움보다는 훨씬 더 많은 해로움을 끼치게 되는 무분별한 구제를 행하지 않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관대함을 악용하는 건강한 거지는 분명히 구제를 받을 자격이 없다.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는 말씀이 성경에 있다.

그러므로 게으른 자들은 선동한다면 하나님의 권능을 모독하는 자와 한패가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의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이 말은 비합리적인 방법으로 행하는 구제를 피하려는 경고이다. 왜냐하면 선행조차도 악한 방식을 행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기만적이고 사악하여서 대부분의 자선의 행위는 타락한 욕망으로부터 나오게 되며, 우리와 관계를 맺고 계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헛될 뿐만 아니라 악하기까지 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주의하라' 고 말씀하심으로써 바로 이 점에서 잘못을 범할 위험이 대단히 크다고 암시하신다. 동료들 사이에 거룩하고 관대하다는 평판을 얻으려는 욕심으로 행하는 자선은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특히 더 모욕하는 것이다.

아, 오늘날 종교적인 세계나 세속적인 세계 모두에서 자기가 행한 자선을 불쾌할 정도로 자만스럽게 자랑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Arthur W. Pink 산상수훈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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