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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86]

En Hakkore 2024. 7. 14. 11:06

율법과 보복 3(마 5:38-42)

"또 누구든지 너를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41절).

이 구절은 실제로 공공 수송 업무에 관한 일이다. 로마 군대는 신체 건강한 남자들을 징벌할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지역을 행군하면서 군대는 그 사람들에게 특정지구나 구역 내에서 운반인이나 안내인으로 일하도록 강요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강제로 메게 되었던 구레네 사람 시몬의 경우에서 우리는 그 한 예를 본다(막 15:21). 그러한 일은 달가운 것이 아니었다.

종종 그와 같은 요구는 고된 동시에 불편한 것이었고, 마지못해 불평하는 정신으로 응해지기 마련이었다. 그리스도의 명령은 그러한 일이 강제적이고 사리에 어긋난 경우일지라도 결코 불평하거나 노예정신으로 행하지 말고, 요구보다 초과하여 기쁘게 응해 주라는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가 국가의 업무에 강제되어질 경우는 아주 적다. 그렇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반갑지 않은 일로 억지로 해야 하는 상황들이 있다.

모든 사람은 선택의 여지 없이 필수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의무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일들을 우리는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이행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악을 대항하는 것을 금하신 이 세 번째 예는 우리의 인격적인 자유를 박탈당하거나 삭감당한 채 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은 지배자가 아랫사람들에게 부당하게 행하여 죄를 범하였어도 피해자가 사적인 보복 방법으로 대항하는 것이 금해진 경우이다.

여기에서는 권세의 남용과, 그리고 어떻게 범죄자가 그 권세의 남용 아래서 행동하는지에 대해 알게 하고 있다. 쓰디쓴 원한에 몸을 맡기느니보다 우리는 참을성 있게 불의를 견디고 그 되풀이되는 일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가 금하신 바에 의하면, 이 땅의 법에 대한 사적인 비방(욕)과, 주인에게 부당하게 취급받았다고 생각한 종들의 불평, 그리고 우리의 마땅한 세금납부에 대한 거부의 행동들 모두가 책망받는다.

이제까지 살펴본 예에서 우리는 행악자들에게 있는 사악성의 세 번째 유형을 주목하여 보았다.

이들은, 즉 아랫사람들의 인격적인 권리를 침해하고 그들의 자유를 부당하게 빼앗음으로써 범죄하는, 권세와 권위를 가진 자들이다.

터무니없는 임대료를 부과하고, 고용인들을 혹사시키며, 그들에게서 안식일의 휴식을 빼앗고,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는 죄를 지은 자들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의 지위와 부, 그리고 명예가 어떻든 관계없이 하나님의 목전에서는 악한 자들이다. 그리고 그 자체만으로도 그들은 다가올 그날에 죄악에 대한 마땅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가 대적하거나 보복하는 행위가 금해진 것이다. 즉 멀지 않아 모든 것에 대한 심판의 때가 오면 모든 그릇된 일이 바로잡아질 것이며 "악인의 승리는 잠시뿐이다"는 말이 온 세상에 선언될 것이다.

"인격적인 자유에 관해 말하자면, 신앙 양심이라는 축복과 영생에의 소망 다음으로 그것은 가장 값진 특혜 중 하나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모든 사람은 자신과 이웃을 위해 그 자유를 획득하고 그대로 지키기 위해서는 많이 행하고 많이 견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들은 모든 필요한 짐과 법적인 속박을 참을성 있게 견디어야 한 뿐만 아니라, 주님의 교훈에 순종하여, 보잘것없는 일시적인 권세로 옷 입은 사람들의 많은 일들을 참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권세의 많은 남용을 너그러이 눈감아 주며, 심지어 폭력과 소동에 의지하기보다 여러 압제 행위들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존 브라운).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44절).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왕국의 의가 그 주인들에게 요구하는 저 고귀하고 관대한 정신에 대해 한층 밝혀준다. 그 의는 그들에게 개인적인 권리에 대한 모든 주장을 단념시킬 뿐만 아니라 다른 선을 행하도록 끌어당길 것이다

그와 같은 견지에서 해석해 보자면, 이 교훈은 우리 의무의 적극적인 측면을 말해주고 있다. 즉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악에 대하여 악으로 보복하는 것을 금하셨을 뿐만 아니라 악을 선으로 갚도록 명하고 계신다.♡

이기주의나 퉁명스러운 거절에 의해 싸움을 야기시키느니보다는 우리에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주고, 친절을 베풀어 주기를 구하는 사람들에베 꾸어 주는 편이 낫다. 우리는 하나심의 청지기로서 우리의 소유물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며, 우리에게 속한 자들의 필요에 따라서 나누어 주어야 한다.♡

다른 교훈들에서 우리가 제한 범위를 설정하거나 예의 사항을 지적해 온 것에 대해 반박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 교훈을 면밀히 주의해 볼 것을 요청하는 바이다.

확실히 그 특별한 권고는 엄격하게 조건부로 적용죄어야 함이 자명하다. 성경을 참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면 그 누구도 그리스도가 이 말씀에서 무분별한 자선을 그리스도인의 의무로 부과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즉 우리가 요청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거저 주거나 꾸어 주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현대생활에서 늘어나고 있는 불행 중의 하나가 자신의 동정심이 그들에게 이끌리는 대로 허용하는 사람들의 잘못 생각된 자선이다.

꾸어주는 일은 '공의로' 행해져야 한다(시 112:5). 사도들의 원칙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는 것이었다.

일하기에 너무 게으른 사람을 계속 무위도식하도록 해야 할 의무는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없다. 다음 열거한 구절들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이 문제에 있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잠 3:27; 고전16:2,3; 고후 8:13, 14; 엡 4:28; 요일 3:17.

Arthur W. Pink 산상수훈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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