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산상수훈 66] 본문
율법과 맹세1(마 5:33~37)
이제 다루게 될 주제는 일반 독자들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주제가 마음을 사로잡기 어려운 문제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께서 그의 첫 공식적인 설교에서 이를 소홀히 다루지 않으셨다는 사실은 이 주제가 결코 무시해 버릴 수 없는 것임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찮은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셨으며 또한 실제 가치가 전혀 없는 전문적인 것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말씀하신 적이 없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영광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며 불멸의 영혼들의 영원한 행복에 관계가 있는, 지극히 중요한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맹세라는 주제에 관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주의 깊게 숙고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고려해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의 명예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의 지혜를 비난하는 것이 된다.
또한 주님께서 이 주제에 대하여 회중들에게 주목케 하신 것은 이번뿐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마태복음 23장에서 주님은 이 주제를 다시 다루시며 아주 상세하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모르는 것을 악으로 생각하는 곳에서는 현명하게 된다는 것이 오히려 어리석은 일이다" 고 말하였지만, 이처럼 어리석은 진술은 명석하고 신중하기보다는 우매한 것으로 생각된다.
모르는 것은 축복으로 생각하는 것은 때로 크게 위험한 짓이 되며 특히 하나님과 관계된 일에 있어서는 치명적이다.
"내 백성의 지식이 없어므로 망하는도다"(호 4:6)라고 구약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사실 지식 그 자체는 언제나 죄를 막지 못하나 때때로 유익한 억제 역할을 한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여기에서 정죄하신 죄를 범하고도 이 문제에 있어서의 자기의 사악함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오늘날 모든 계층 간에 저주하고 맹세하는 것보다 더 성행하는 일은 없으며, 지금은 바로 설교와 글로써 이 점에 대하여 소리 높여 경고해야 할 때이다.
이 주제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은 이것이 십계명 중 세 번째 계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준수에 근본적으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지적함으로써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모든 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저주가 내려져 있으므로, 이 주제는 기초적이고 매우 중요한 것이다. '맹세', '맹세하다', '서약하다' 등의 단어에 관한 성구사전을 찾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면, 그는 이에 관하여 말하는 구절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게 될 것이다.
끝으로, 올바르게 맹세하는 일은 예배의 한 행위임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좀 더 명백하게 우리가 지금 다루는 주제의 중요성과 가치를 깨닫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관계가 있는 일에 성경적으로 규정을 내리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며, 우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관계가 있는 일에 성경적으로 규정을 내리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며,
우리는 하나님께서 승인하고 받아주시기에 합당한 방식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마 5:33~37).
여기에서 우리는 이 구절에 대하여 몇 가지 강해적이고 해설적인 논평만을 할 것이며, 그 다음에는 전체 주제에 대하여 세부적으로 다루게 될 것이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