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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67]

En Hakkore 2024. 7. 13. 22:46

율법과 맹세 1(마 5:33-37)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33절).

우스광스럽게도 많은 주석가들은 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모세의 율법 중의 하나로 간주하려고 애썼으나, 결국은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하신 이 말씀은 구약 성경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는 고백을 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에서 이 문제에 관한 율법의 가르침을 요약하신 것으로 가정하고 말았다.

이러한 혼동이 있어서는 안되며 이러한 설명은 받아들일 수 없다. 실상, 우리 주님은 여기에서 하나님의 계율들을 언급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율들에 대해서 유대인들이 곡해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주님께서는 여기에서도 바로 앞의 구절들에서 하셨던 것과 똑같은 순서를 취하신다. 즉 먼저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오해를 언급하시고, 그 다음에는, 토론 중에 있는 문제들에 관하여 그가 자기 왕국의 시민들에게 요구하는 의의 특성에 대하여 설명하신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 20:7).  

여기에 맹세에 관한 본래적이고 근본적인 율법이 있으며, 우리는 이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신 6:13)는 말씀과 연결시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맹세는 여호와라는 두려운 이름에 호소하는 것이었으며, 이것은 맹세하는 자의 영이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고 지존자를 인식하도록 각성시킴으로써 그 맹세에 신성함과 능력을 부여해 주셨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맹세하였을 때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는 엄숙한 경고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은 허락되어져 있었음이 매우 분명하지만, 일단 이렇게 하였을 때에 맹세한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을 바꾸어서는 안되었으며, 또한 그들의 약속을 조금이라도 깨뜨려서는 안되었다.

시편 저자가 "여호와의 장막에 유하고 그의 성산에 거하기에" (즉 하나님과의 친교를 나누고 그의 임재하심을 영원히 즐거워하기에) 합당한 자의 성격을 묘사할 때 상술된 특징 중의 하나는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는 자"(시 15:4),  

즉 그가 맹세한 말을 절대로 취소하지 않는 자라는 것은 주목해 볼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모세의 율법은 맹세하는 일을 엄격히 억제하고, 이것을 엄숙한 경우에만 하도록 제지하였다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이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는 또한 출애굽기 22:11, 12; 레위기 5:1; 19:12; 민수기 5:19~21과 같은 구절들을 참조하라.

그러나 유대의 율법사들은 하나님의 율법들을 곡해하게 되었고, 바리새인들은 그 변조시킨 것을 계승하였고, 그것에 덧붙였다. 그리스도께서 이 경우에 하신 말씀으로 보아 우리는 쉽게 이들의 잘못과 악습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로, 33절에서 그들은 부당하게도 맹세에 관한 모세의 계율들을 거짓맹세를 금하는 것으로만 제한시켜 버렸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 거짓맹세만 하지 않았다면 모든 맹세가 아무 때든지 악하지 않다는 위험한 추론을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이 모든 문제에 있어서, 그리고 사소한 모든 경우에 있어서까지 맹세를 남발하게끔 유도하였다.

모세의 율법은 거짓맹세를 엄중히 정죄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상 대화에 있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그리고 쓸데없이 일컫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어느 누구도 그것이 논쟁거리가 되는 문제로서, 맹세가 없이는 그 논쟁이 해결될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임의로 맹세해서는 안 되었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나누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히 6:16).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왜곡하여, 사람들이 사소한 일에 관하여서도 참되게 맹세하고 그 맹세가 약속인 경우 그것을 실행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다 좋다고 가르쳤다.

그들은 함부로 맹세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던 듯하다. 맹세가 정당하기 위해서는 참되게 확언을 하고 맹세를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롷게 확언을 하고 맹세를 하는 형식도 필요하다.

Arthur W. Pink 산상수훈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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