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산상수훈 68] 본문
율법과 맹세 1(마 5:33-37)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33절).
둘째로, 34-36절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또한 유대인들이 피조물로 맹세하는 방법을 생각해냄으로써 제3계명을 왜곡하였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인간들의 타락한 본성에 영합하여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목적으로(거짓 선생들은 언제나 그들에게 잘 속는 사람들의 맹목성과 탐욕에 진리를 교묘히 적용시켜 왔다),
서기관들은 비록 사람들이 거짓맹세를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 맹세를 깨뜨리는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내었다. 즉 하나님의 이름으로써가 아니라 하늘이나 땅이나 예루살렘이나 성전으로 맹세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맹세에 여러 가지 차이를 두었다. 그들에 따르면, 어떤 맹세는 구속력이 있었지만 다른 맹세는 그렇지 아니하였다. 즉 어떤 맹세를 지키는 일은 사람이 맹세한 대상의 성격에 따라 좌우되었다(마 23:16).
왜 지도자들이 이러한 수단에 의지하게 되고 그들의 추종자들이 왜 그처럼 그러한 수단을 좋아하였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율법은 매우 명확하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신 6:13).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게 한 것은 거짓말을 하기 쉬운 타락한 인간들에게 엄숙한 굴레를 씌우기 위해서 일 뿐만 아니라 또한 진지한 문제들과 중요한 경우에만 맹세를 하도록 제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몇 가지 생명이 없는 대상으로 맹세를 하게 하는 이 권고는 맹세가 지녀야 할 경외심을 제거해 버렸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위선자들이 자기의 사악함을 참으로 쉽게 가려 버렸음을 즉시 깨달을 수 있다.
즉,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핑계를 대었다.
필로(Philo)는 "하나님 곧 만물의 창조주께로 곧장 달려가서 그를 두고 맹세하는 것은 죄이며 무익한 일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러므로 부모나 하늘이나 별들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가르쳤다.
셋째로, 37절의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또한 유대인들이 일상 대화에 있어서 가볍고도 평범하게 맹세를 하도록 부추기고 허락하였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논리적이고 필연적으로 우리가 이제 이야기한 두 번째 악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은 그 자체가 정직하지 못하고 타락한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빠진) 맹세는 가볍게 여김을 받아 사람들이 아무 문제에 대해서나 아무 때든지 맹세를 하게 되기 때문에, 이것은 자연히 제3계명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성전의 금과 제단의 희생물로 하는 맹세는 예외로 하고(이것은 이기적이거나 미신적인 이유에서 구속력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사람들은 피조물로 맹세를 하는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으며 아무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고 죄의식 없이도 일상 대화에서 맹세를 하였던 듯하다"(존 브라운).
Arthur W. Pink 산상수훈 p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