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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342]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342]

En Hakkore 2024. 7. 3. 11:20

풍성한 은혜2(출애굽기 33:11-17)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출 33:11).

이는 모세의 전 생애를 통하여 가장 은혜로운 순간이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 중 가장 복된 계시였다. 이것은 심지어 여호와와 더불어 그러한 기이한 교제를 나눈 산에서의 경함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이전에 일찍이 누리도록 허락되지 아니한 그러한 가까운 접근과 밀접한 사귐이 있었다. 민수기 12장에 보면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의 권위에 도전했을 때, 여호와께서 그를 옹호하여 이르시기를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민 12:7)고 하셨고 이어 덧붙이기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라고 하셨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이러한 말씀은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장의 마지막에 있는 말씀 곧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고 하신 것으로 비교하여 그 해석을 곡해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 우리 앞에 있는 일은 여호와와 그의 종 사이의 자유롭고 친근한 교제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여호와를 불경스럽게 한 일에 의해 결별된 이후에 곧이어진 일이었다.

오! 사랑하는이여, 영문 밖 그에게로 나아가는 것은 "그분의 치욕을 지는 일"(히 13:13)이 될는지는 모르지만 보상이 있도다 - 그는 우리가 신실하신 그부의 영예를 떨어뜨리는 관계에 머물러 있을 때에 일찍이 누려보지 못한 일 곧 친히 그를 나타내심과 그의 사랑의 친밀함으로 보상하신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여기에 중보자 모세는 두말할 나위 없이 그리스도의 복된 모형이 된다. 여기에 나타난 이 사실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대관계의 소중한 예시가 된다.

그가 성육신하시기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잠 8:30)라고 한다. 성육신하신 후에 그에 대하여 이르시기를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고 한다.

다시 이르시기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아들에게 보이시고"(요 5:20)라고 한다. 또 가라사대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요 16:32)고 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사랑과 친밀함의 자리가 되는 아버지의 보좌에 앉아 계신다(계 3:21).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출 33:11).

이 말씀의 모형적 의미를 지적하기 전에, 먼저 여기에 우리를 위하여 예시된 실천적 교훈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여기에서 제시하고 있는 실례는 꼭 참작해야 할 중요한 것으로서, 특히 하나님으로부터 지도자의 위치에 전념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더욱 그러하다.

하나님의 종은 그의 백성을 수종들 자격을 얻기 전에, 그는 먼저 자신부터 하나님을 찾아야 하며, 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전에, 반드시 여호와께서 그와 '대면하여' 말씀하셔야만 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섬김의 능력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유지하는 데서만 얻어진다.

더 나아가서, 그가 비록 돌아와서 그의 백성을 섬기더라도 그는 영으로 여전히 장막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가 항상 그러하듯이, 여기에서도 모세와 여호수아는 공동으로 서로 보충하여 완성하는 자들로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이 단원은 두 가지의 모형으로 끝을 맺는다. 즉 모세는 진영으로 돌아오고 여호수아는 성막 안에서 떠나지 아니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려는 사랑의 힘을 대표한다. 그는 사람이 그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말씀하신 그 사람으로, 그가 머물렀던 그 장소, 즉 그를 만들었던 교제의 장소에 성별하여 있으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섬기기 위하여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한 자는 진리를 타협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타협된 진리에 가담하기를 스스로 용납하지도 아니하며, 오히려 하나님의 뜻으로 맺은 유대관계에 대하여 모든 은총과 신실함으로 섬길 준비가 되어 있는 자였다.

그러나 그러한 섬김에는 여호수아의 영을 그 수종자로서 항상 동반했다. 섬기는 일이 어떠한 활동이라 할지라도, 종은 그 영으로 그 감미로운 은신처를 떠나지 아니한다. 그는 영으로 언제나 '진 바깥'에 있다. 그의 사랑은 거시 그들이 머무르는 처소에 있었고, 그의 만족과 안식은 내 안에 있는 여호와이다"(C. A. Coates).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이 모형의 상세한 내용을 찾아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 이유는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의 영안이 희미하기 때문이다. 구속을 말하는 책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와 여호수아가 함께 연결된 여러 구절이 있다. 레위기에서는 여호수아가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음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첫째,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모세와 여호수아는 아말렉을 지는 일에 관련해서 서로 협조하고 있다. 우리가 이 시리즈의 25장에서 보여주려고 하듯이, 거기에서 여호수아는 성령의 정복하심의 모형이었으나, 그리스도인들 안에 있는 '육신' 을 근절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다음 출애굽기 24:13에 이르기를, "모세가 그의 부하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모세가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라고 한다. 여기에서 성령은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수종자의 형태로 나타나 있는데, 성령은 현 시대 동안에 그리스도의 영향력을 지속하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한다.♥

그 다음 출애굽기 32:17, 18에서, 성령은 상징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의 죄를 점고하고 있다. 여기 출애굽기 33:11에서는 성령께서 진정한 교회 안에 내주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비교, 고전 3:16; 엡 2:22).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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