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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343]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343]

En Hakkore 2024. 7. 3. 11:21

풍성한 은혜 3(출애굽기 33:11-17)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출 33:12).

여기와 그 다음에 즉시 이어지는 구절을 보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면서, 그의 은총으로 우리를 지켜주는 우리의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의 또 다른 복된 예시가 있다.

우리가 먼저 살펴보아야 할 중요성은 여기서 간구하고 있는 이 모세는 하나님의 목전에 "은총을 입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이 특수한 형태의 말이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이라는 말로나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는 말로 12, 13, 16절에서 얼마나 놀랍게도 반복하여 강조되었는지 살펴보라.

이는 주 예수를 그의 가련한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은총을 입었음을 얼마나 명백히 지적하고 있는가! 그리스도께서는 그 자신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진 것에 근거하여 이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

이 사실을 이해하면 우리의 심령에 평강이 있게 된다. 그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은 전혀 그들 가운데서 발견한 것에 근거하지 않고,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은 바 그 결과물이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언뜻 보기에 이 말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다음의 출애굽기 32:34의 말씀과 서로 충돌되는 것같이 보인다.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주의 깊게 읽어보면 뚜렷한 차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출애굽기 32:34은 여호와께서 그의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아니한 채로 머물러 있기에, 여호와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출 33:3).

그러나 이제는 백성들이 그들의 죄를 뉘우치고 그들이 그것으로부터 떠났음을 입증하였으므로, 모세가 이르기를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라고 한다. 참으로 복된 구분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심중에 명심하기를 바란다.

모세는 누가 그들과 함께 갈 것인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죄로 인하여 간구하는 자리를 취한 것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이 말씀은 출애굽기 3장을 되돌아보게 한다.

하나님께서 맨처음 모세를 가시덤불 사이에서 부르실 때, 이름으로 그를 부르셨다.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출 3:4). 그렇다면 이제 모세가 왜 새삼스럽게도 광야 뒤편에 있었던 잊지 못할 체험을 언급했던 것인가?

이는 그곳에서 여호와께서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이 되심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또 그를 가리켜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데려갈"(출 3:8)자로 선포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에 대해, 백성들의 반목이 그 어떠할지라도 그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며, 그의 목적은 성취될 것임을 스스로 보증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모세의 믿음의 담대함을 보게 되었다. 또한 여기에서, 우리는 이 모형에서 그 예표까지 보도록 해야만 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맺은 영원한 언약에 근거하여 그는 지금도 그럴 가치가 없는 그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시며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출 33:13).

이는 매우 복된 일이다. 모세에게는 이스라엘의 슬픈 실수 그 자체마저도 다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나타내 보이는 경우로 제시되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으며, 친히 맹세하셨으며, 또한 그의 약속은 실제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감으로 확증되었으니, 그들이 광야에서 멸절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제 그의 방법을 배우기 위하여 주님에게 구한다. 하나님의 '길'(방법)은 그가 보증하신 일의 선을 이루기 위하여 성실하게 추구하는 경로이다. 이 구절에 의하여 수많은 가치 있는 실천적 개념들이 제시되고 있다.

첫째,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의 '길'을 발견할 수 없다. 이것은 시편 기자의 기도 가운데서 인정되었다.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시 25:4). 또 이르시기를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시고 내 원수를 생각하셔서 편탄한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시 27:11).

둘째, 오직 하나님만이 그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실 수 있다." 심지어, 성육신하신 아들은(온전한 순종의 자리를 취하신)도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시 16:11)라고 하셨다.

셋째, 우리가 그를 더 잘 알도록 그의 길을 보여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낮아지시기 때문이다. "주의 길을 내게 보이소서 그리하면 내가 주를 알리이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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