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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339] 본문

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339]

En Hakkore 2024. 7. 3. 11:19

진바깥 4(출애굽기 33:4-10)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출 33:7).

지금부터 이 말씀에 대한 상징적 중대성에 대하여 고찰해 보도록 하자. 이에 대하여 우리는 즉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히브리서 13:13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성령께서는 분명히 출애굽기 33:7을 염두해 두었기에, 여기에서 있는 관점에서 우리는 이 신약성경의 권면을 해석해야 한다. 거기에 기록된 것은 성별할 것을 요구한 것이지만, 우리가 그 모형(the type)에 주의하지 않으면 그 원형(the anitype)의 적용에 실패하게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모세가 "진 바깥" 에 장막을 치게 된 여건을 항상 염두해 두어야만 한다. 그때는 이스라엘이 원망한 때가 아니었고(출 16:2), 그들이 안식일을 범한 때도 아니었으며(16:27, 28), 아말렉이 쳐들어온 때도 아니었다(출 17:8).

그것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와 결별하고 금송아지를 세운 때였다. 진영에서의 전반적이고도 공개적인 우상 숭배가 모세를 진 밖으로 "멀리 떠나게" 요구하였다!

같은 원칙이 히브리서 13:13을 해석하는 데도 잘 적용된다. 이 권면은 교파 관념이 팽배하고 불륜이 성행하며 성만찬이 육신의 잔치로 변한 고린도 사람들에게 한 것도 아니었다. 그와는 달리 그 권면은 '히브리인들' 에게 한 것이었다.

복음을 믿는 유대인들에게는 그리스도를 경멸하고 거역하는 불신의 국가를 버리도록 명령이 부가되었다. 그 '진영' 이 하나님의 아들을 학살한 죄를 범하였으므로 그것을 버리도록 요구하신 것이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은 출애굽기 33:7이나 히브리서 13:13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주님을 소유하고 존귀하게 여기며 경배하는 '교회' 나 하나님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단체로부터 떠나는 사유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여호와께로 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오직 그들만이 진정한 영적인 근거 위에 선 유일한 사람들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거짓된 조직들로부터 분리된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하나님 자신의 백성들로부터도 분리되었다.

오늘날 그들이 그 어느 교단보다 더욱 이단시됨은 조금도 이상히 여겨질 것이 없으며, 하나님은 그들의 교만과 바리새적인 주장을 업신 여기신다.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라고 함은 하나님 자신의 백성들로부터 떠나는 것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그리스도께 사랑을 받는 자들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계속하여 거하기를 거절하게 한 것은 그들의 단합된 우상 숭배 때문이었다. 그때 비로소, 모세가 진 바깥에다 장막을 친 것은 그때가 여호와 자신이 거절당하셨던 때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 외에는 그 어떤 일도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는 자들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일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 이 땅 그 어디에서도 완전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으며, 완전에 가장 가깝다고 자부하면 할수록 그러한 고백을 증명할 만한 근거가 더 적다.

북은 큰 소리를 내지만 그 속은 비어 있다! 그러하다. 이상적인 여건, 드러내신 모든 하나님의 뜻을 성실히 이행하는 일이란 그 어떤 그리스도인 단체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위탁하였지만, 모든 일에 실패의 낙인이 찍혀 있다.

실수를 잘하는 나의 형제자매로부터 동떨어져 "나는 너희들보다 더 거룩하다"는 자세를 취하는 것은 나를 의롭게 만들지는 못하는 일이니, 이는 내가 아마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보다 더 큰 실패자로 보일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자만 속에서 자신들의 눈에 있는 들보를 보기에는 둔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 티를 보기에는 빠른 것이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소멸되지 아니한)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계 3:2)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히 12:12)라고 하셨는데, 이를 순종하면 모든 사람들과 모든 일들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달성하게 될 것이다.

또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엡 4:2)고 하셨는데, 이는 우리들 모두에게 다른 사람이 가지는 시련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 어느 '교회' 나 모임을 막론하고 인내와 사랑에 대한 많은 시련이 있을 것이나, 만일 거기에 주께서 계신다면 그곳 역시 나를 위한 장소이다. 그가 "오래 참으시니" 나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의 가치가 하락하고 하나님의 자리에 거짓된 신이 세워지고, "다른 예수"(고후 11:4)가 증거되면(신인, 동정녀 탄생, 그의 백성의 죄를 위하여 죽으심, 육신으로 살아나 죽음을 이기신 그러한 '예수' 아닌 자), 이야말로 내가 그곳으로부터 나와야 할 때인 것이다.♥

그를 부인하는 곳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나의 땅을 모욕하는 처사가 된다. 여기서 모세는 이러한 원칙 아래서 행동하였으니, 모세뿐만 아니라 "여호와를 앙모하는 모든 자"들이 그러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를 인도해주는 히브리서 13:13의 원칙의 적용은 그 어떤 지역적인 여건 속에서도 단순하고 명백하다.

만일 내가 주 예수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로 모시고, 죄인들을 위한 유일한 구주로 여기며, 그 백성의 본보기로 삼는 그러한 그리스도인의 무리와 함께 주님을 섬기고 있다면 비록 거기서 하는 설교가 내가 바라는 것만큼 교화되지 아니하며, 그곳에 있는 제자들이 내가 바라는 것에 비하여 너무도 미흡하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이유들이 그들을 저버려야 할 하등의 원인이 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많은 기도가 요청되는 곳이며, 나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보다 온전한 주의 길을 보여주는 계기를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성경의 영감을  부인하며, 가증된 신을 세워 성령이 소멸된 그러한 장소에 있다면, 나의 친구들이 하는 일이 그 어떠하며, 형제들의 결심이 어떠하다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 앞에서 그를 심히 불경하게 하는 이러한 일로부터 분리되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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