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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출애굽기 강해 (Gleanings In Exodus)

[Exodus 344]

En Hakkore 2024. 7. 4. 11:34

풍성한 은혜 4(출애굽기 33:11-17)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출 33:13).

이것은 진 바깥에 장막을 치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모세의 대답이었다. 그때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와 네가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낸 백성들은 여기서 떠나 올라가라" 고 하셨다. 여기에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라고 간구한 믿음에 대한 응답이 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그 말씀과 그 맹세와 그 언약에 스스로를 던지면서, 타는 덤불 속에서 스스로 새롭게 되었던 자는 모세였다. 그 이후의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보면 그들이 가데스바네아에서 믿지 아니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사게 되었을 때에도 모세가 동일한 간구를 올렸음은 살펴보아야만 한다(신 9:26과 그 내용 참조).

앞으로 다가올 날에, 남아있는 경건한 유대인들은 이러한 쟁론을 반복할 것이다(요 2:17). 마지막으로, 우리의 큰 대제사장이신 이가 이것을 그의 간구의 근거로 삼으신 것은 주목되어야 한다.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요 17: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출 33:14).

우리들이 보는 영어 성경의 번역자는 여기에 있는 주안점을 놓친 것으로 여겨진다. 기록된 바와 같이 15절에 있는 모세의 대답은 의심과 불신의 어조일 것이다.

만일 여호와께서 그가 모세와 함께 가실 것을 긍정적으로 확언하셨다면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이라는 대답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말이 된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미 그에게 확신을 주셨다면, 16절의 묻는 말도 무의미하게 된다.

결국, 그런 경우에, 17절의 여호와의 말씀도 불필요한 반복이 된다. 만일 "컴페니온 바이블(Companion Bible)" 에서와 같이 14절을 의문형으로 강조하게 되면 모든 어려움은 제거될 것이다.

즉, "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갈까? 내가 너를 쉬게 할까?" 이 말은 곧 나를 그렇게도 거역한 너희와 어찌 내가 함께 갈 수 있는가라고 하는 말과 마찬가지였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적개심을 강조하였고 그리고 그의 거룩성이 요구하는 바를 주지시켰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출 33:15).

이 문제도 여전히 균형을 이루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이르도록 모세에게,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 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겠노라" 고 명령하셨다. 이스라엘은 이 명령에 순종했고, 모세는 여호와를 찾으려고 진 밖으로 나갔다(7절).

그의 믿음은 이제 시험대에 올랐는데, 개인적으로 그가 하나님을 믿는 것 보다는, 넘치토록 풍성한 주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다. "내가 친히 갈까? 내가 너를 쉬게 할까?" 라는 말씀은 그의 마음에 도전이 되었다.

그들의 신념의 진정한 근거를 스스로 잘 발견하도록 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때때로 이와 같이 그의 백성을 시험하신다. 그의 많은 제자들이 그를 버리려고 할 때 예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요 6:67)고 물으셨다.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을 그리스도께서 아셨고 또 그들도 알았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마음을 그 스스로에게 끌어내셨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모세는 상황을 훌륭하게 부각시켰다고 하거나 아니면 여호와의 도전에 그의 심령이 복되게 응답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는 여호와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될 것임을 느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신념이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앞에' 사자가 나아가리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여호와께서 친히 임재하시는 것, 즉 열망하는 그의 영혼과 하나님이 교제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또한 모든 새로된 심령들이 고대하는 일이 아니랴? 여기에서 모세가 자신을 이스라엘과 동일시 한 것은 매우 감동적인 일로서, 그는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라고 말한다. 그는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히 2:13)고 말씀하신 이를 다시 얼마나 잘 예시해 주는가?

Arthur W. Pink 출애굽기 강해  p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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