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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주권 (The Sovereignty of GOD)

[하나님의 주권 11]

En Hakkore 2024. 5. 18. 18:55

하나님이 인간을 다스리신다 2

이 결론에 아무런 제한도 덧붙이지 말아야 한다. 적어도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좌절시키고 그분의 계획을 뒤엎는다고 주장한다면, 똑같이 분명하게 말하는 다른 구절들을 부정하는 것이다. 다른 몇 구절을 세밀히 살펴보라.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욥 23:13).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시 33:11).

"지혜로도 못하고, 명철로도 못하고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하지 못하느니라"(잠 21:30).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사 14:27).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오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사 46:9-10).

이러한 구절은 조금도 모호하지 않다. 이것들은 아무것도 하나님의 목적을 막지 못함은 가장 분명하고 확실하게 확증한다.♡

성경을 읽으면서 인간의 행동이, 선인뿐 아니라 악인의 행동까지도, 여호와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헛 읽었다. 니므롯과 그의 추종자들이 바벨탑을 쌓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탑이 완공되기 전에, 하나님은 이들의 계획을 좌절시키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만 부르셨다(사 51:2 참조). 그러나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친족도 함께 떠났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이 좌절되었는가? 아니다. 그다음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라.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가나안에 이르기 전에 죽었다(창 11:32참조). 조카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약속의 땅에 들어갔으나 곧 그와 헤어져 소돔에 정착했다. 하나님은 이삭의 아들 중에서 야곱에게 기업을 약속하셨다. 그런데도 이삭은 불순종하여 어떻게든 기업(유산)을 에서에게 돌려주려 했지만, 그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에서는 야곱에 대한 복수를 맹세했다. 그러나 오랜 후에 형제가 다시 만났을 때, 두 사람은 싸우지 않았고 도리어 기뻐 울었다. 형들은 요셉을 해치려 했으나 이들의 악한 계획은 뒤집어졌다. 바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도록 허락하지 않았고,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홍해에서 죽었다.

발락은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하셨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달려고 교수대를 세웠으나 모르드개 대신 자신이 달렸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다. 그런데 그의 거역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시 2:1-3).

그러나 위대하신 하나님이 자신의 보잘것없는 피조물의 배반에 불안해하거나 당황하시겠는가? 절대 아니다. "하늘에 계신 이가 비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이다"(시 2:4). 그분은 만물보다 무한히 높으시다. 그러기에 그분의 목적을 좌절시키려는 가장 넓고 가장 강력한 준비라도 그분이 보기에는 유치할 따름이다.

하나님은 이들의 하잘것없는 노력에 눈꼽만큼도 놀라지 않으며, 되려 이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으신다. 하나님은 이들의 무능력을 조롱하신다. 하나님은 원하면 언제든 이들을 하루살이처럼 밟아버리거나 입 기운으로 순식간에 소멸할 수 있다. 깨진 질그릇이 영광스런 하늘의 왕과 싸우려는 것은 헛짓이다. 바로 이런 분이 우리 하나님이다. 이분을 예배하라.♡

하나님의 백성을 보내라는 하나님의 요구를 바로에게 전달할 하나님의 대사로 선택된 사람은 유창하게 말을 잘하는 형 아론이 아니라 어눌한 동생 모세였다. 그런가하면 모세는 하나님께 큰 사랑을 받았으나 경솔한 말 한 마디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 반면에 엘리야는 심하게 불평했는데도 가벼운 꾸지람만 받았을 뿐 마지막에는 살아서 승천했다. 웃시야는 법궤를 잠깐 만졌을 뿐인데도 즉시 죽었다. 그 반면에 블레셋 사람들은 법궤를 전리품으로 가져갔는데도 당장 아무 해도 입지 않았다.

소돔이라도 회개시켰을 만한 은혜를 부어주셨는데도, 가버나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두로와 시돈이라도 회개시켰을 만한 이적을 행하셨는데도, 갈릴리 성읍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것들이 어느 곳-소돔, 두로, 시돈-에서는 그러지 못했는가? 은혜와 이적이 성읍을 구하지 못할 거라면, 왜 굳이 그런 성읍에 은혜를 베풀고 이적까지 행하셨는가? 지존자의 주권적인 뜻을 보여주는 참으로 놀라운 예가 아닌가?♡

Arthur W. Pink 하나님의 주권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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