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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기도 67] 제13장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기도 (Effectual Fervent Prayer)

[영적인 기도 67] 제13장

En Hakkore 2024. 5. 5. 15:52

요한계시록 1:5,6(I)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계 1:5,6)

우리가 살펴보게 될 이 기도는, 각기 독특한 위격 안에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의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는 요한계시록 1:4,5의 인사와 축복을 마무리하는 부분이다.

이 삼위일체 하나님은 1)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즉 스스로 존재하시며 변함이 없으신 분 여호와이시다. 그는 그의 영원하신 존재와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심이 기억되어져야 할(출 6:2-5) 기념할 만한 이름을(출 3:13-17) 가진 자로서 묘사되고 있는 분이다.♡

2) 그 보좌앞에 일곱 영, 즉 능력이 충만하시고 여러 가지로 활동하시는(사 11:1,2) 성령.

3)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연결하는 끈으로서 마지막에 언급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여기에서 3중적 이름이 구주께 주어지는데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

1) 말 구유에서 십자가에까지 이르는 그의 고결한 삶 전체를 표현해주는 "충성된 증인". 2) 무덤에 대한 그의 승리를 찬미해 주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 이 이름은 위광(창 49:3)을 나타내주고 시간을 초월해 있는 우월성을 의미해 준다. 3) 그의 왕 같은 위엄과 통치를 말해주는 "땅의 임금들의 머리".

이 세번째 이름은 "모든 정사와 권세" 위에 뛰어나게 높아지신 이로서, 또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신 자로서(사 9:6), 지금도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신 분으로서(히 1:3), 모든 무릎이 그 앞에 꿇게 될 자로서(빌 2:10)의 정복자를 말해주고 있다.♡

이 기도에 대한 분석적 개요

구원자의 완전하심과 위엄에 대한 앞의 이야기는 사도 요한의 찬미의 외침, 즉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라는 말씀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도의 본질은 또 다시 송영이 된다. 기도의 대상은 그의 중보적 성격과 직분 안에서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찬미의 기도를 드리는 자는 그의 중보의 은혜를 받는 '우리'들이다.

이 기도는 그의 측량할 길 없는 사랑과 그가 보배피를 흘리심의 효과와 그가 그의 구원받은 자에게 주신 놀라운 위엄들에 대하여 우리로 깨닫기를 격려하고 있다. 또 이 기도는 확신의 말 '아멘'(그렇게 될지어다)으로써 끝을 맺으며 단지 천년만이 아니라 "세세토록"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있기를" 원하며 그에게 그려지는 것이다.♡

젊은 설교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하여, 나는 송영에 대한 몇 가지 일반적인 소견을 피력하고자 한다.

송영은 우리가 하나님의 여러 위격에 대해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 필요하다

성경의 송영들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위격들에 대하여 좀더 높은 개념들을 갖추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 위격들의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속성들에 대하여 좀더 자주 그리고 경건하게 명상을 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들이 물질세계에 나타나 있음에 대하여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신성은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며 이교도들은 하나님께서 손으로 만드신 것들에 대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는 죄로 가득차 있다(롬 1:19-21).

우리의 감각은 나무들의 아름다운 색깔과 꽃의 향기들을 기뻐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지성은 동물들의 동작과 본능에 대해 깊히 생각하고 그것들을 지으신 하나님의 손을 찬미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몸의 구조와 그 편리함과 각 지체 사이의 완전한 적합성에 대하여 놀라움을 표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시편기자와 함께 하여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 139:14)라고 찬송하는 일이 거의 없다. 우리를 다른 모든 비이성적인 피조물 위로 높이 일으키는 우리 속사람의 여러 가지 재능들은 훨씬 더 놀랍다.

우리에게 이처럼 풍부히 부어주신 이를 찬송하는 것보다 더 훌륭히 우리의 이성이 발휘될 수 있는 방법이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를 지으시고 존재하게 해 주신 자비로우신 이에게 우리는 감사의 고백을 드리는 일이 거의 없다. 우리는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데에서 분명히 나타나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대하여 생각하는 일이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출생과 사망의 수에 있어서 성의 균형이 유지되어 인간의 계획이 없이도 지상의 인구가 세대에서 세대로 유지되어옴을 생각해 보라. 또 인간들에게는 여러 가지 기질과 재능이 주어져서 어떤 사람은 자문과 관리와 경영에 지혜로운 자이지만, 또 어떤 사람은 수공업에, 또 다른 사람은 성직에 봉사하기에 더 적합함에 대하여 생각해 보라.

또한 하나님의 경영이 인간들의 천한 격정을 억제하여서 법이나 질서와 같은 방법으로써 일반적으로 이 사회에서 약자들과 "약한 자 안에 처해서"(요일 5:19) 온 세상에서는 살 수 없는 선한 자들이 강자들에 의해 파멸당하지 않게 되어 있음을 생각해 보라.

또한 하나님께서 탐욕스러운 독재자들의 성공을 어떻게 제한하셔서, 그들이 모든 것을 누리려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 그들이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선포하신 자에 의해서 갑자기 멈추게 되어짐을 생각해 보라. 또한 하나님께서 응보의 법칙을 적용하심으로써, 개인이나 국가가 좋든지 나쁘든지 자신이 씨뿌린 것을 수확하게 되어 있음에 대해 생각해 보라.

우리가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계 19:6)라고 외치는 일이 거의 없는 것은 바로 우리가 이러한 일들과 이와 비슷한 다른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하여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기도 p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