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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47] 십 광야에 머뭄(사무엘상 23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47] 십 광야에 머뭄(사무엘상 23장)

En Hakkore 2024. 2. 18. 11:08

광야에서 드린 기도

"어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그는 심히 지혜롭게 행동한다 하나니 너희는 가서 더 자세히 살펴서 그가 어디에 숨었으며 누가 거기서 그를 보았는지 알아보고 그가 숨어 있는 모든 곳을 정탐하고 실상은 내게 보고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리니 그가 이 땅에 있으면 유다 몇 천 명 중에서라도 그를 찾아내리라 하더라"(삼상 23:22-23).

사울은 십으로 가기 전에 현재 다윗이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보다 상세한 정보를 얻기를 바랐다. 그는 자기가 쫓고 있는 사람이 그 지역에 대해 자기보다 훨씬 더 익숙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 그는 다윗이 현명한 전략가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쩌면 다윗은 이미 어떤 지역을 요새화했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왕은 보다 상세한 정보를 얻어 자기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포위해 사로잡으려면 얼마나 많은 병력이 필요할지 알고 싶어 했던 것이다.

십 사람들이 배신했다는 소식이 다윗의 귀에 들렸다. 그리고 비록 왕의 늑장이 그에게 마온 광야로 피신할 시간을 주었을지라도(삼상 23:24), 어쨌거나 이제 그는 또다시 고달픈 도망자 신세가 되어야 했다. 그의 상황은 절망적이었고, 전능자 외에는 아무도 그를 그 상황에서 구해낼 수 없었다.

이때 그가 살아 계신 하나님께 돌아서서 그분 앞에 자신의 긴급한 상황을 아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복되다. 그가 시편 54편에 기록된 기도를 드렸던 것이 바로 이때였다. 그 시편의 머리글은 다음과 같다.

"십 사람이 사울에게 이르러 말하기를 다윗이 우리가 있는 곳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던 때에" 거기에서 우리는 다윗이 여호와께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제 그 내용을 좀 더 상세히 살펴보자.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시 54:1)

다윗은 인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오직 기적만이 그를 구해낼 수 있었고, 따라서 그는 하나님께 기적의 역사를 간청했다. 다윗은 거두절미하고 요점으로 직행해 다음과 같이 외친다.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그일라 사람들은 그를 숨겨 주지 않았고, 십 사람들은 야비하게도 그를 배신했다. 사울과 그의 군사들은 그의 피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그의 호소는 그분의 영광스러운 "이름" 에 대한 탄원이었다. 그 이름은 그분의 모든 복된 속성들의 총체를 대표한다. 또한 그의 호소는 그분의 의로우심에 대한 탄원이었다.♡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 이것은 "다른 아무도 나에게 그것을 줄 수 없으니, 나를 위해 공의를 베푸소서" 라는 말이다. 이것은 그의 목적의 순수함을 드러내는 말이었다. 우리는 목적이 순수할 때만 자신의 정항함을 입증하기 위해 하나님의 정의의 능력에 호소할 수 있다.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2절).

우리는 죄인들이 우리에게 해하는 부당한 일을 견디는 동안 이 말을 기억하며 주님께 돌아설 필요가 있다. 우리는 위를 바라보고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얻어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지치거나 마음이 혼미해지지 않을 수 있다.

스펄전(C. H. Spurgeon)이 잘 말했듯이, "하나님이 귀를 열고 계시는 한, 우리가 곤경에 갇혀 있을 수는 없다. 다른 무기들이 모두 쓸모없게 될지라도, 모든 기도는 항상 유효하다. 그 어떤 적도 이 대포의 화문(火門)을 막아 못쓰게 만들 수는 없다."

"낯선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들이 나의 생명을 수색하며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셀라]"(3절).

다윗을 알지 못하기에 그에게 나쁘게 해야 할 아무런 이유를 갖고 있지 않은 자들이 그를 박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낯선 자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자신이 그분을 위해 미움을 당하고 있다고 탄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서 이 시편의 나머지를 상세히 설명하지는 않으려 한다. 다만 이 시편에 포함된 세 가지 사항에 대해서만 주목하도록 하자.

첫째, 3절 끝에 나오는 "셀라" 이후의 마지막 네 구절에서 나타나는 변화다.

스펄전은  이 "셀라"라는 단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썼다. "그는 마치 '이제 됐으니, 잠시 쉬자' 하고 말하는 듯 분노로 숨을 헐떡인다. 부당하다는 감정이 그로 하여금 잠시 노래를 멈추게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더 많이 멈춰 서는 것이 우리의 기도를 더욱 증진시킨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대개 우리는 지나치게 서두는 경향이 있다.

둘째, 하나님에 대한 그의 굳건한 신뢰와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리라는 확신이다.

이것은 4-6절에서, 특히 "주께서는 내 원수에게 악으로 갚으시리니"(5절)라는 구절에서 잘 나타난다. "그들을 멸하소서" 라는 말은 뜨거운 복수심에 차서 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분명한 선고에 대한 동의(Amen)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자신의 기도가 응답을 얻으리라는 절대적인 확신이다.

7절에 나오는 "주께서는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셨고"(hath delivered me, KJV. 현재 완료형 문장이다-역주)라는 말은 아주 놀랍다. 우리는 이 구절을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는 마가복음 11장 24절과 비교하면서 주의 깊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1 p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