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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29] 시글락으로 도망침(사무엘상 21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29] 시글락으로 도망침(사무엘상 21장)

En Hakkore 2024. 2. 16. 12:42

자기를 의지함

앞 장에서 우리는 다윗이 사울의 살의에 찬 공격을 피해 나욧으로 도망쳤던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의 무자비한 적은 그곳까지 그를 따라왔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위해 놀랍게 개입하셨다. 그러나 다윗은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고 당시에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가 그를 지원하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했고 사무엘과 더불어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말씀을 받기 위해 조용히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사울로 인해 발생한 긴급한 위험에 놀란 그는 요나단과 무익한 협의를 한 후 문제를 자기 힘으로 해결하기로 결심하고 놉으로 도망쳤다.

거기에서 그는 제사장에게 거짓말을 해 떡을 얻어냈다. 하지만 그것은 복수심에 불타 살기등등한 사울로 하여금 에돔 사람 도엑을 시켜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삼상22:18)을 죽이게 하는 무서운 대가를 치러야 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유익을 구하고 자기 스스로 길을 개척하려고 할 때, 그 결과는 참으로 끔찍하다. 만약 다윗이 여호와를 신뢰하고 그분이 자기를 위해 일을 떠맡아 주시기를 기다렸다면, 상황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기에 충분하시고(빌 4:19) 능히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넘치도록 하실 수 있다(엡 3:20). 그분은 이런 일을 직접 하실 수도 있고, 만약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이 기뻐하는 뜻을 이루고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을 제공하는 데 적합하다고 여기신다면, 다른 피조물을 도구로 사용해 간접적으로 하실 수도 있다.

하나님이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시는 경우는 없다. 모든 것, 모든 사건, 모든 피조물이 다 그분의 통제하에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충족성이라는 이 기본적인 진리를 충분히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런 거룩한 진리의 완전성을 우리의 생각이나 행위를 기준으로 판단하거나 부인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확실히 우리는 긴급한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법적인 수단을 사용할 때 그런 일을 한다. 아브람(창 20장)과 이삭(26장)의 경우가 그러했다. 그때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들의 목숨을 부지하는 데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자기들의 아내를 부인했다.

마치 하나님이 그들을 보다 훌륭하고 명예로운 방식으로 구해내시지 못할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시글락에서 다윗이 보인 행동 역시 그러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앞에서 나는 성도가 하나님과의 교제가 그칠 때, 즉 그가 타락한 상태에 있을 때, 그의 행동은 예전의 행위와 너무도 다르고 그의 고백과도 너무나 일치하지 않기에 마치 낯선 수수께끼처럼 보인다는 것을 간략하게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그 수수께끼는 분명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우리 중 누구라도 "빛을 보는 것"(시 36:9)은 오직 하나님의 빛 안에서뿐이다. 주 예수님은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18:2)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우리가 참으로 그분을 "따르고" 우리의 마음이 그분이 우리를 위해 보여 주신 모범에 관심을 둘때만 그분을 기쁘게 그리고 명예롭게 해드리는 길을 보고 알고 걸을 수 있다.♡

그것과 유일하게 다른 상황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자기 힘으로 우리의 이웃이나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우 우리에게는 혼란과 문제만 일어날 뿐이다.

하나님 - 그분은 "빛"이시다 -과의 교제가 단절될 때, 우리에게 남는 것은 영적 어두움뿐이다. 세상은 "어두운 데"(벧후 1:19)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걷지 않는다면(시 119:105), 그때 우리는 허우적거리다 넘어질 것이다.

"마음이 굽은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가득하고"(잠 14:14) 하나님의 "행사"(시 103:7)와는 무관하다. 주님과 우리의 교제가 깨질 때, 우리는 더이상 하늘의 가르침을 받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심판의 두려움이 몰려오고, 우리의 모든 행동은 지혜의 결여, 즉 어리석음이라는 특징을 갖게 된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삶의 많은 것들에 대한 열쇠, 즉 현명하지 못한 일들과 우리가 그것으로 인해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여러 가지 어리석은 일들에 대한 설명이 있다. 그때 우리는 성령의 통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힘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고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조언을 구하거나 상식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타락한 자가 얼마나 오랫동안이나 그런 상태에 머물지, 혹은 얼마나 어리석고 극단적으로 행동할 것인지 알 방법은 없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경우가 그것을 엄중하게 보여 준다. 앞에서 우리는 다윗이 자신이 무장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겁을 집어먹고 제사장에게 혹시 그곳에 자기가 사용할 만한 무기가 있는지 몰랐던 것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곳에 있는 유일한 무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여호와의 선하심의 증거물로 성막에 안치되어 있는 "골리앗의 칼" 뿐이라는 말을 들은 다윗은 "그 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삼상 21:9)하고 소리쳤다.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었는가"(애 4:1). 여호와를 경외하며 살았을 때는 물매만 들고서도 골리앗을 향해 주저 없이 돌진했던 그가 이제 사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자기가 죽였던 그 거인의 칼을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이런 사실에 놀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지난날 우리의 여러 가지 실패의 원인들을 발견하고 그것에 대해 놀라기보다는 슬퍼해야 할 더 큰 이유를 갖고 있는 게 아닐까?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1 p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