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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78] 아브라함의 환상 본문
창세기 15:6을 문자적으로 읽으면 다음과 같다.
"아브람이 여호와 위에 스스로를 지탱시키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And he stayed himself upon the Lord; and He counted it to him unto righteousness).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그의 상속자는 그 자신의 몸에서 날 자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을 때, 그의 몸은 마치 "죽은 자와 같은" 상태였다(히 11:1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불신앙으로 비틀거리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굳건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 4:20-22). 💕
아브람은 그것이 자연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추론하지 않았다. 도리어 하나님이 말씀대로 이루실 것이라고 믿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며, 그것으로 충분했다. 자신의 몸은 죽은 것 같았으며, 사라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아기를 가질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에게 심지어 죽은 자까지도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이것은 하나님이 의 대신에 믿음을 받으신다는, 다시 말해서 믿음을 의와 동등한 것으로 받으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렇다면 믿음 자체가 공로가 될 것이다. 다만 믿음은 의가 흘러들어 오는 통로, 혹은 의를 담는 그릇이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여기에 나타나는 전치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instead of" 아니라 "unto"이다. - He counted it to him unto righteousness. 아브라함의 경우는 단순히 그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었다. 그것은 대표적인 경우였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롭다하심을 받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나 그의 경우와 우리의 경우 사이에는 매우 중요한 차이가 있다. 아브람은 하나님이 자신의 몸을 다시 살리심을 통해 자신에게 아들을 주실 것을 믿었다. 반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아들을 주셨음과, 그 아들이 죽음과 다시 살아남을 통해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믿는다.♡
여기에서 잠깐 멈추고 한 가지 난제(難題)를 생각해 보자. 아브람은 창세기 15:6에서 의롭다 여기심을 받기 오래 전에 이미 "신자"(信者)였나? 우리는 이 사건 이전에 이미 아브람이 신자의 상태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베드로를 만나기 이전의 고넬료의 상태와 비슷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히브리서 11:8은 그가 "믿음으로"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가? 그런데 어째서 성경은 여기에서 또 다시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말씀하시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신약은 아브람이 "믿음으로" 갈대아 우르를 떠났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분명 그때 그는 신자였다. 그러나 거기에서 - 즉 히 11:8에서 - 그의 믿음은 의로 여기심을 받는 것과 연결되어 언급되지 않는다. 대신에 성령께서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아브람의 믿음이 "의로 여기심을 받은" 때를 여기의 창세기 15장으로 제시하기를 기뻐하셨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람의 믿음이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그의 "자손"과 관련한 하나님의 약속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갈 3:16을 보라). 이와 같이 아브람이 "의로 여기심을 받은" 믿음은 약속된 자손과 관련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믿는 믿음이었다.
성령께서 "의롭다하심에 이르는 믿음"을 위한 본보기로서 선택하시기를 기뻐하신 것은 바로 여기 즉 창세기 15장에서의 아브라함의 믿음이었다. 그리스도를 떠나 의롭다하심은 없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8, 39).
그러므로 여기 즉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람이 처음으로 "하나님을 믿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여기에서 하나님은 처음으로 그의 의를 공개적으로 확증하시기를 기뻐하셨다. 이것을 오늘날의 경우와 비교해 보자.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이생의 일상적인 관심사들과 관련하여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이 곧 그들이 의롭다함을 받는 믿음이 아니다. 의롭다함을 받는 믿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및 사역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
창세기 15장에 언급된 아브람의 믿음의 성격은 바로 이것이었다 - 그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기 12장이 아니라 15장에 가서야 비로소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라는 말씀을 읽게 된다. 하나님의 방법은 얼마나 완전한가!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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