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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93] 요단 강을 건너다(여호수아 3:7-17)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93] 요단 강을 건너다(여호수아 3:7-17)

En Hakkore 2024. 3. 12. 12:35

출애굽기 25-40장과 레위기의 대부분에서 하나님은 그 백성들과 그 분 자신과의 하나된 교제를 유지하기 위해 그가 베푸신 것들을 알려 주시며, 그리하여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분의 거룩하심이 요구하는 것들을 정당하게 유지하고, 또한 그들이 도덕적 행동자들로서 지니는 의무들과 구속받은 백성으로서 행해야 할 임무들을 적절히 수행하게 하시는 것이었다.

여호와와 그들의 관계가 한편으로는 신적으로 지명된 제사장들을 통해,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계명들에 대한 그들의 순종을 통해, 유지되었다. 오직 그 덕분에 그들이 합당한 예배자들로서 거룩하신 그 분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었고, 오직 그 덕분에 그들이 그 분께로부터 앞으로의 일들을 위한 필수적인 지침들을 받을 수 있었다.

여호수아서가 갖는 모형적 의미는 앞의 책들에서 이미 알려진 진리를 지탱시키고 강화시키는 동시에, 그 이전의 역사를 보충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한다. 바로 이 책에서 비로소 이스라엘이 하나님 안에서 그들의 소유를 소유하게 되고, 조상들에게 약속되었던 그 안식에 들어가게 된다.

이 점과 관련해 이 문제를 다루기에 우리보다 더 나은 자격을 갖춘 한 분의 말을 직접 듣는 것이 좋겠다 싶다.

"지상의 가나안은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들이 차지하게 될 궁극적이며 합당한 기업으로 계획하신 것이 아니었고, 그들 역시 처음부터 그것을 그렇게 이해하지 않았다. 그것에 대해 전해진 말씀과 그들이 가졌던 소망은 분명 가나안 땅의 경계 내에서 실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기업은 부활의 자녀가 된 자들만이, 그것도 영혼과 육체가 죄의 모든 효과와 결과로부터 완전히 구속함 받은 후에야-혹 하늘의 아담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아 전혀 죄를 범하지 않았을 경우보다도 더 영광스럽고도 복된 상태가 된 후에야- 비로소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업을 받는 자들이 그 기업에 걸맞아야 하므로, 그 기업이란 오로지 사람의 본래적인 소유가 회복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곧 땅이 죄로 인하여 더러워진 저주로부터 구속함을 받아, 사람 자신이 그렇듯이, 하나님의 아들을 닮게 된 교회와 및 그 모든 지체의 적절한 거소가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지상의 가나안을 점령한 일은 구속함을 받은 교회가 그 받을 영광의 기업을 받는 것을 그려주는 하나의 모형이었고, 따라서 그들이 자기들의 잠정적인 소유지에 들어간 사실에 관한 모든 일은 교회가 그 영구한 소유 가운데 세워지는 것에 속한 일들을 나타내고 그림자로 보여 주도록 그렇게 정렬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약속-이는 가나안 땅을 포함하나, 거기서 종결되지 않았다-을 주시는 일과, 또한 그것을 통해 미래의 더 나은 기업을 내다보며 전망하는 일 사이에 중요한 사건들이 개입되는데, 그 사건들을 그 더 나은 기업에 관하여 앞으로 드러나게 될 일들의 모형으로서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그것들을 바라보는 지극히 적절한 방법이라 할 것이다. 이런 질문들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약속의 상속자가 현대의 식민지처럼 온 땅을 소유하기까지 전쟁이나 피 흘림이 없이 조용히 그 땅에 스며들어가서 그 땅 전체를 차지하지 않고, 어째서 그 땅을 소유하기까지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나그네로 떠돌아다니고 낯선 지역에 갇혀 있었는가?

어째서 그들이 압제자에게 끔찍한 심판을 집행하고서야 비로소 해방될 만큼 이방 권세의 잔인한 압제를 받는 처지로 떨어졌던가?

어째서 그들이 가나안을 소유하기 전에 시내산 언약을 통해 율법의 통치를 받고, 은혜와 약속의 언약에 더하여 그 철저한 규칙들과 갖가지 섬김의 의무 사항들을 부여 받게 되었는가?

잠정적으로 그 기업을 소유하도록 허용 받은 백성들이 그 기업 자체에 대한 소유권을 부여 받았음을 입증해 보여야 했음에도 그들이 계속해서 가증스러운 일들을 행하여 그 기업을 오염시킴으로써, 그들을 완전히 멸절시키고서야 비로소 그곳이 약속의 상속자들이 거주할만한 적절한 곳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째서일까?

이런 모든 질문에 완전하고도 만족스럽게 대답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일을 더 높은 경륜에 속한 더 나은 것들과 연결시키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곧 그것은 하나의 일관된 계획의 첫 부분이요, 그 다음 부분에서 구속한 받은 피조 세계의 영광된 모습들이 이어지게 되는데, 교회는 비슷한 관계들 속에 처하고 지상적인 기업과 관계되는 경험과 유사한 일들을 통과함으로써 그 최종적 결과들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야곱과 더불어 약속의 언약을 확증한 일과 실제로 그 약속된 땅을 소유하는 일 사이에 일어난 모든 일은-또한, 특별히 그중에 가장 큰 일, 즉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일은-하나님의 상속자들이 그 값 주고 사신 소유를 기업으로 누리게 되는 방식과 양식을 모형으로 그려주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편 교회가 분명히 바라보고 간과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 중요한 교훈이 있다.💕

첫째, 그 기업이 언제 어떤 식으로 오든지 간에 그것은 주권자이시며 진정한 주인이신 하나님이 그분의 은혜의 교제로 부르신 자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것으로, 그분의 값없는 선물이라는 점이다.

둘째, 그 기업에 대한 소망이 그들의 마음에 활력을 주는 원리로서 반드시 있어야 하며, 그것이 그들의 모든 처신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자세와 성품이 하늘에 속한 그 더 나은 본향을 상속자들에게 걸맞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소망'으로 형성되기 전에 그가 마음속에 진정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페아번[Patrik Fairbairn] 성경의 모형론(The Typology of Scripture). 제1권 1865년).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