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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92] 요단 강을 건너다(여호수아 3:7-17)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92] 요단 강을 건너다(여호수아 3:7-17)

En Hakkore 2024. 3. 12. 12:30

이 점은 매우 특별하며 따라서 잘 살펴야 한다.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수 3:7)고 말씀하시고, 곧바로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수 3:8)고 명하셨다.

대제사장 엘르아살이 각 지파들의 기업을 분배하는 일에서 전면에 가담하지만, 그때에도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부여하신 위치를 가리는 일은 전혀 없었다.

이 영감된 성경의 기록에서 크게 두드러지는 사항 가운데 하나는 엘르아살과 여호수아가 함께 행동할 경우 연합하여 활동한다는 사실이다. 제사장직이 그에 합당한 존귀한 위치를 차지하면서도 동시에 여호수아가 그들을 권위로 다스리는 동일한 특질이 6장의 여리고성 함락 기사에도 나타난다.

언약궤가 모든 용사보다 앞서 행진한 것은 물론, 그 앞에 "일곱 양각 나팔을 잡은 일곱 제사장"이 행진했는데(4절), 이 제사장들에게 명령을 한 것이 바로 여호수아이었던 것이다(6절).

여호수아서의 이러한 두드러진 특질에 대해 좀 더 길게 다룬 것(주께서 허락하시면 뒤의 장들을 다루면서 이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언급하게 될 것이다)은 이에 대해 저술한 분들이 대개 그 점을 소홀히 해 왔기 때문이기도 하나, 그보다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및 하나님의 백성과의 연관성으로 인하여 그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사실 여호수아가 우리 주님의 그림자로 인정되는 구약의 뛰어난 인물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널리 인정받아 왔다. 하지만 우리가 이 여호수아 시리즈를 완성하게 된다면, 그가 그리스도의 그림자였음을 보여 주는 점들을 최소한 오십 가지는 보여드릴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러나 엘르아살 역시 동등하게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으며, 따라서 두 사람을 함께 연결시켜 바라보아야 완전한 그림이 완성된다는 것을 인지한 사람은 매우 적다. 그들의 전임자들을 살펴보면 이 점이 금방 드러난다.

모세와 아론을 함께 연결시켜야만, 하나님이 지정하신바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히 3:1)의 완결된 모형을 얻게 되니 말이다. 여호수아와 엘르아살 역시 그랬던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가 모형적 성격을 지닌 것이요, 따라서 은혜로 선택받은 모든 이의 구원과, 그들의 경험, 그리고 그들을 위한 갖가지 배려들을 그려준다는 사실은 기름부음 받은 눈이라면 놓칠 수가 없을 만큼 너무도 명백하다.🧡

바로에게서 받은 그들의 압제와 애굽의 벽돌 가마에서 토로했던 그들의 탄식은 사탄에게 종노릇하며 죄 아래 속박되어 있는 우리의 모습을 아담 안에서 타락한 결과로 생겨난 우리의 본성적인 처지를, 그리는 그림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애굽인들의 잔인한 멍에에서 스스로를 자유하게 하지 못한 그들의 처절한 무능력함은 스스로 우리의 처지를 조금도 낫게 만들 수 없는 자신의 타고난 무력함을 그리는 것일 수밖에 없다.

모세라는 구원자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는 장차 그분의 백성을 해방시키기 위해 신적인 구원자가 오실 것에 대한 하나의 행위 예술(a prophecy in action)이었다. 유월절 밤에 어린 양과 또한 그 피가 죽음의 사자를 물리는 피난처가 된 사실은 복음을 통해 이제 충만히 선포되는 바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한편, 홍해에서 바로와 그의 군대가 넘어져서 이스라엘이 "바닷가에서 애굽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출 14:30)을 바라본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구속과 우리 죄를 제거하는 일이 완결되었음을 말씀해 준다.

그 이후의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의 역사와 거기서 그들이 당하게 되는 시련과 어려움, 그들의 실패와 성공,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해 베푸신 은혜로운 공급하심 등은 성도가 그들의 영원한 기업을 향해 나아가며 겪는 갖가지 경험들을 그림자로 보여 주는 것으로 올바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출애굽기 후반부와 레위기의 상당 부분이 지니는 모형으로서의 가치는 전반적으로 잘 인식되지 못했다. 하나님의 백성을 그들의 원수들로부터 구해내신 일은 그보다 훨씬 더 큰 목적-즉, 그들을 이끄사 하나님과 가까이하고 그에게 호의를 받는 위치에 이르게 하고자 하는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