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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814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본문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요 18:1-11)
요한복음 18장은 구세주와 그의 제자들이 동산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러나 이 동산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하는데 있어서, 이곳만큼 성령의 주관하시는 손이 분명히 드러난 곳도 없다고 본다.♥
여기에는 주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동산 깊숙한 곳으로 데리고 가셔서 “그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신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또한 주님께서 그곳에서 아버지께 기도하신 것, 그가 땅에 엎드린 것, 그가 깊히 번민하신 것, 그가 피땀을 흘리신 것,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힘을 돋운 것 등에 대하여는 말하고 있지 않다.
다른 복음서에는 이것들이 아주 적절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요한이 그리도록 영감을 받은 이 그림에는 부적합하다는 듯이 생략되어 있다.
그 대신 공관복음서에는 찾아볼 수 없는 다른 세부적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요한복음의 이것들은 아주 적절하게도 주목할만한 것들이다.
주님은 자주 찾아가셨던 그 거룩한 동산으로 열한 제자들과 함께 가셨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님은 깊이 고민하셨다. 공관복음서에는 이것이 기록되어 있지만 요한은 이것을 생략하고 있다.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제자들 가운데에서 뽑아내어 그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부탁하셨던 세 제자 중의 하나로서 그때 주님과 아주 가까이 있었다.
나머지 제자들은 그들의 선생과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그러므로 그 엄숙한 때에 관하여 권위 있게 기록할 수 있었던 복음서 저자 가운데 요한이야말로 그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내용을 생략한 사람은 다름아닌 바로 그였다! 다른 복음서 저자가 기록한 내용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는 주님이 붙잡히신 일과 관련된 상황을 왜 그처럼 상세하게 묘사하였단 말인가! 그는 이 복음서를 기록한 특별한 경향, 즉 주님을 신적 인간으로서 표현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만이 이것을 설명해 줄 것이다.
요한은 주님을 고난받으신 인간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타낸다. 그래서 우리는 요한을 통하여, 다른 어느 누구도, 곧 주님과 함께 있었던 마태까지도 언급하지 못하였던 것,
즉 주님의 개인적인 현존이 먼저 유다를, 그리고 그 배신자와 함께 온 무리를 어떻게 위압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Mr. C. E. Stuart).
공관복음서를 보면 구세주께서는 지상에서의 생활이 거의 끝나감에 따라, 그가 사람들의 손에 고난을 받아야 할 것과 사람들이 그를 조롱하고 그에게 침을 뱉을 것,
그리고 그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로부터 치욕적인 대우를 받을 것, 그리고 이것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장사지냈다가 부활함으로써 끝나리라는 것을 거듭 말씀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 요한복음에서 주님은 그가 죽으실 때가 다가옴에 따라 그가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에 대하여 주로 생각하고 계신 듯하다(13:4; 14:2; 16;5; 17:5 참고).
그리고 모든 내용이 이것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여기 동산에서는, 아버지 앞에 엎드리는 그리스도의 모습 대신, 구세주를 잡으러 온 자들이 그 앞에 엎드러지는 광경이 나온다!
주 예수의 완전한 우월하심이 이보다 더 엉광스럽게 나타난 것은 없다. 즉 군병들에게까지 주님은 명령을 내리시고 이르써 제자들은 아무 방해를 받지 않고 갈 수 있었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p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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