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 John 811 그리스도의 중보기도4 본문

강해시리즈/요한복음 강해 (An Exposition of John)

■ John 811 그리스도의 중보기도4

En Hakkore 2026. 6. 1. 15:10

그리스도의 중보기도4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주님께서는 세상과 그의 백성사이에 명확하게 경계선을 긋고 계신다. 그리고 그 경계선을 결정하시되 그를 거부한 데 따르지 아니하고 그의 아버지를 알지 못한 데에 따르셨다.

그러므로 은혜에 의지하여 제아무리 탄원한다 할지라도 결국 그것은 심판에 맡겨질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17:11에서 그가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 그들을 보전하신 것처럼 이제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시라고 간청한 것과 달리 '거룩하신 아버지여' 라고 하지 아니하고 '의로우신 아버지여'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세상의 불법을 제시하지 아니하시며 그 자신이나 제자들에 대한 세상의 증오를 제시하지도 아니하신다.

또한 복음에 계시된 은혜와 진리에 대한 세상의 증오나, 또는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 앞에 숨김없이 드러나 있는 기독교와 교회의 부패에 대한 세상의 증오를 제시하신 것도 아니다.

그는 한편으로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한 것을 제시하시며,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을 제자들이 알았던 것처럼 아들도 아버지를 알았다는 것을 제시하신다.

이것은 단순하고 간략한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님께서 우리들을 자기 자신과 연관시킨 데에는 엄숙함이 깃들어 있다. '나는 이 일들의 성격과 결말을 알고 있나이나'”(Bible Treasury).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17:26).

여기에서 주님께서는 그가 제자들을 위하여 행하셨고 또 여전히 행하실 일, 곧 그들에게 아버지를 알게 한 일에 대하여 간략하게 요약하신다.

그는 마지막 구절에서 그가 처음에 말씀하셨던 내용으로 돌아오신다. 6절을 보라. 우리는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알게 하리니” 라는 말을 제한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사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성령으로 아버지를 계시하고 계시다. 그러나 그는 영원토록 계속하여 그렇게 하실 것이다. 다음으로 그는 자기가 어째서 아버지의 이름을 선포하셔야 하는지를 설명하신다.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Arthur W. Pink 요한복음 p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