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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ohn 810 그리스도의 중보기도4 본문

강해시리즈/요한복음 강해 (An Exposition of John)

■ John 810 그리스도의 중보기도4

En Hakkore 2026. 6. 1. 15:09

그리스도의 중보기도4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이것을 아버지께서 그에게  이 영광을 주신 이유로 제시되어 있다.그리고 그 양을 재는 표준을 제공하고 있다.

즉 복되신 우리 구세주께 부여된 영광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위해 가지고 계신 영원한 사랑에 상응한다!

그것은 분명히 놀라운 영광이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것은 특권이요 영예이며 축복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그의 빛나는 영광을 응시하게 될 때를 열망하게 해 준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17:25).

요한복음 17장의 마지막 두 구절이 앞 구절들과 맺고 있는 관계를 정확하게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 말들을 주의 깊게 고찰해 보면, 우리는 그것들이 소망을 표현한 것도 아니요 축복을 간청한 것도 아니며, 또 그 앞에 제시된 청원들을 강조하기 위한 변론들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필자는 맨턴의 동의하에 이렇게 생각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간청의 일부이다. 그는 유언을 하셨었다. 그리고 이제 그 정당성을 주장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여기의 “의로우신 아버지여”라는 말이 이중의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어서 자비로우실 뿐만 아니라 공의로우시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의 은혜는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기 때문이다(롬 5:21).

그것은 아버지께서 모든 일을 타당하게 처리하시리라는 그의 공의에 대한 구세주의 신뢰를 나타내고 있다.

“그는 영원한 계약의 규정에 따라 그가 권리를 얻으신 것을 요구하시고 있다. 공의대로 하자면 그의 요청들은 허락되어야만 한다” (존 브라운).

“의로우신 아버지여”라는 말은 그 다음에 나오는 말, 곧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라는 말과도 관련이 있다. 이것은 매우 엄숙한 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위해서 중재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아버지의 공의에 맡기셨다.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택하심 받은 자들에게는 거룩한 영광이 부여된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의로 인하여 믿지 아니하는 세상에게는 영광이 부여되지 아니한다.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다.” 여기에 세상의 죄책이 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19, 20).

Arthur W. Pink 요한복음 p992